그리스 미술
그리스는 국토의 75%가 험준한 산악으로 이루어진 나라다. 골짜기마다 독립된 도시국가(폴리스)가 형성되었고, 높은 산은 자연스러운 국경이 되었다. 각 폴리스는 고지대에 아크로폴리스를 세워 유사시 대피처로 삼았으며, 서로를 견제하면서 스파르타, 아테네, 마케도니아 등 각기 다른 정치 형태를 발전시켰다. 인류 최초의 투표가 이루어진 곳이자, 철학과 문학, 예술이 발달한 현대 서구 문명의 뿌리가 바로 이 땅이다.
역사적 배경
미케네 왕국은 펠로폰네소스 반도에 자리한 해상왕국으로, 황금으로 둘러싸인 번영의 상징이었다. 죽은 왕에게는 황금 수의와 마스크가 씌워졌을 만큼 군사적, 경제적 수준이 높았다. 그러나 B.C. 1100년경 도리아 민족의 침입으로 약 300년간 민족의 대이동이 이어졌고, 이후 그리스 세계는 폴리스 중심의 새로운 질서로 재편되었다.
스파르타는 외진 곳에 자리 잡은 군국주의 국가였다. 7살부터 군사훈련이 시작되었고, 여자들도 건강한 아이를 낳기 위해 훈련을 받았다. 메세니아 평야를 확보하기 위해 20여 년간 전투를 벌였으며, 이것이 경제적 기반이 되었다.
아테네는 그리스 문화의 상징이다. 파르테논 신전은 세계문화유산 1호로, 높이 10여 미터의 아테나 여신상이 황금과 상아로 꾸며져 있었다. 아고라는 ‘사람들이 모인다’는 뜻으로, 시장이자 토론의 장소였다. 아테네의 주 작물은 올리브(70~75%)와 포도였는데, 올리브는 아테나 여신의 선물이자 아테네의 상징으로서 식민지에 팔려 상공국가로의 발전을 이끌었다.
기원전 5세기 초, 아테네와 페르시아의 전쟁이 벌어졌다. 스파르타는 육지에서, 아테네는 바다에서 싸웠다. 아테네는 살라미스 해전에서 승리했고, 삼단노를 저은 최하층 시민들이 전쟁 승리의 주역으로 떠오르면서 민주주의가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다. 파르테논 신전은 페르시아 전쟁 직후 페리클레스에 의해 건립되었으며, 대리석 2만 톤이 사용되고 델로스 동맹 금고의 60%가 투입되었다.
이후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스파르타가 승리하고, 결국 마케도니아 왕국(알렉산더)에 지배당하면서 그리스 문명은 막을 내리게 된다.
그리스 미술의 특징
그리스 미술은 인간 중심 사상을 바탕으로 정확하고 규격화된 이상미, 조화미, 균형미를 갖추어 서양 미술의 근원이 되었다. 이집트 미술에서 보이는 평면성에서 벗어나 공간감을 획득했으며, 이로써 형상이나 인물을 사실적으로 묘사하여 설득력 있게 전달할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을 그리스 미술의 서술적 기능(Narrative function)이라 한다.
그리스인들은 이성적 능력을 존중하고 인간 생활의 이상을 실현하려 했다.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 헤로도토스의 《페르시아 전쟁사》,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와 《오디세이》가 이 시대에 꽃피웠다. 다신교를 믿었기에 신전 건축과 신상 조각이 발달했고, 올림픽 제전과 비극·희극 공연도 신을 경배하기 위한 것이었다.
시대별 전개
1. 기하학 양식기 (B.C. 11세기 말 ~ 8세기 말)
도자기에서 동물과 인간을 단순화한 프리즈와 기하학적 테두리 문양이 나타난다. 대표작인 디필론의 암포라는 162cm 높이의 항아리로, 여러 종류의 기하학 무늬가 율동적으로 배열되어 도형미를 보여준다.
2. 아르카익기 (B.C. 8세기 말 ~ B.C. 480)
정치적으로 안정되어 미술이 극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한 시기다. 원시적인 신들에 관한 전설이나 신화에 의심을 품기 시작하면서 사물의 본질에 대한 관심이 증대했다. 그리스 중동부 아티카 지역에서 발달하여 ‘아티카 회화’라고도 불린다.
도자기는 두 종류로 나뉜다. 흑회상(黑繪像) 도자기는 붉은 진흙 위에 검은 색으로 인물의 윤곽을 그려 넣은 것이고, 적회상(赤繪像) 도자기는 배경을 검정색으로 하고 형상을 붉은 진흙색으로 남긴 것이다.
조각에서는 ‘아르카익 스마일‘이라 불리는 미소가 특징이다. 쿠로스(Kouros)상은 직립 부동형의 남자 누드 입상으로, 정면을 향한 자세와 왼발을 내밀고 있는 모습이 특징이다. 코레(Kore)상은 착의(着衣)를 한 처녀상이다.
3. 고전기 (B.C. 480 ~ B.C. 323)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아테네가 패배하여 정치적 번영이 중단되었으나, 미술가들의 자유를 바탕으로 한 다양성이 이 시기의 특징이다. 이오니아 양식으로 건축된 에렉티움 신전이 대표작이다.
조각에서는 아르카익 스마일이 사라지고 한쪽 다리로 체중을 지탱하는 콘트라포스토(Contrapposto) 자세가 나타난다. 골격의 축은 S자형으로 표현된다. 폴리클레이토스는 《카논(Canon)》에서 이상적인 신체 규범으로 7등신 비례를 제시했고, 리시포스는 이를 8등신론으로 대체했다. 이것이 비트루비우스로 이어지며 그리스의 세계관인 ‘카논(Canon)’이 확립되었다.
대표작으로는 《원반 던지는 사람》(미론), 《창을 멘 남자》(폴리클레이토스), 《크니도스의 비너스》, 《헤르메스와 어린 디오니소스》(프락시텔레스) 등이 있다.
4. 헬레니즘기 (B.C. 323 ~ B.C. 27)
알렉산더 제국하의 미술 양식을 말한다. 소아시아와 인도 국경, 이집트까지 영토가 확장되면서 동서방 문화가 혼합되었고, 제국의 위용을 과시하기 위해 화려하고 강한 인상을 주는 것이 특징이다. 인도에 전해져 간다라 미술이 탄생하기도 했다.
철학에서는 개인주의 사상이 발달하여 에피쿠로스 학파(쾌락주의)와 스토아 학파(금욕주의)가 등장했다. 미술에서는 전 시대에 발달했던 이상화가 약화되고 보다 사실적이고 육감적이면서 육체의 운동과 정신적 격동을 표현했다. 거칠고 격렬하며 관능적인 것이 표현의 대상이 되었다.
대표작으로는 격렬함과 긴장감으로 충만한 파토스 표현의 대표작인 라오콘 군상, 사모트라케의 니케상, 밀로의 비너스 등이 있다.
후대의 평가
| 양식 | 시기 | 특징 |
|---|---|---|
| 고대 양식 | 페이디아스 이전(아르카익) | 엄격함, 딱딱함 |
| 숭고 양식 | 페이디아스와 동시대인 폴리클레이토스 | 숭고함, 딱딱함 |
| 미의 양식 | 프락시텔레스, 리시포스 아펠레스 | 우미 |
| 모방자 양식 | 그 뒤 예술의 멸망까지(로마) | 보잘것없음 |
요하임 빙켈만은 예술이 그리스에서 완성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후세인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이 완전한 모범을 모방하는 것뿐이다. 그래서 그는 당시 사람들에게 그리스를 모방하라고 열심히 권하고 다녔는데, 그의 이런 생각은 오랫동안 커다란 영향을 끼치게 된다. 가령 헤겔이 예술의 시대가 고대 그리스에서 끝나고 그 뒤 예술은 사멸한다고 말했을 땐, 역시 빙켈만의 편견(?)에 사로잡혀 있었던 거다. 하지만 그럴 만도 하다. 어찌 인간의 손으로 이보다 더 아름다운 형태를 만들어낸단 말인가.1
《라오콘》은 헬레니즘 예술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헬레니즘 시대는 그리스의 몰락기로, 빙켈만의 시대 구분에 따르면 대충 ‘미의 야식’과 ‘모방자 양식’ 사이의 기간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 시기의 조각은 아주 역동적이고 극적인 성격을 띠는데, 이런 특징이 《라오콘》에서도 잘 드러난다. 라오콘은 원래 트로이의 신관으로,목마를 성 안에 들여놓으면 안 된다고 경고했다가, 하늘의 비밀을 누설한 죄로 두 아들과 함께 신들이 보낸 뱀에 휘감겨 비참한 최후를 맞은 인물이다. 빙켈만은 이 작품 속에서 그리스 예술의 본질적 특징을 보고, 그걸 ‘고귀한 단순함과 고요한 위대함‘으로 특정지었다.
일반적으로 그리스 걸작들의 두드러진 특징은 그 자세나 표정에 나타난 ‘고귀한 단순함과 고요한 위대함’이다. 바다의 표면이 아무리 거세게 일어도 그 깊은 곳만은 언제나 고요함을 간직하고 있는 것처럼, 그리스 인물들의 표정은 아무리 격정적인 상황에 있어도 한결같이 위대하고 침착한 영혼을 보여준다.
하지만 빙켈만의 설명도 라오콘의 표정에 드러난 저 깊은 고뇌의 흔적은 지우지는 못할 것 같다. 이 비극적 감정은 도대체 어디서 비롯된 걸까? 몰락하는 그리스 사회의 불안한 심리를 표현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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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의 미학 오디세이 1』 p.84~8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