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코 혹은 예술의 탄생 마네 - 조르주 바타유
조르주 바타유- 라스코 혹은 탄생/마네
마네에서 시작된 인상주의로부터-야수파와 입체파를 경유해-초현실주의에 이르기까지, 회화의 오랜 욕구인 폭력적 전복이 일어났고, 스캔들은 바로 그 징표다. 무엇도 여기에 어떤 명확한 한계선을 그을 수는 없다. 하지만 이 다양한 움직임들은 그저 하나의 거대한 변화에 따른 다양한 측면들일 뿐이다. P.266
마네는 자신의 단호하고 거친 성격으로 스캔들거리가 된 것을 파괴했다. 예술이 탐색하는 것이, 자고로 주권적 형상들의 위대함을 구축해왔단 규약에 따르는 감정들의 위엄을 대체하는 지고의 가치(혹은 지고의 매력)라면, 우리에게 매력적인 것 역시 바로 이러한 뻣뻣함이다. 이는 요컨대 인간다움, 수많은 규약들로 속박하던 끈들에서 해방된 인간다움이다. 산문이든 웅변이든, 설교든 수다든, 그것들이 발화하는 것은 그 규약들이다. <올랭피아>를 보면 뭔가가 제거됐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게 되는데, 이는 순수한 상태 그대로의 매력이 정밀하게 표현됐기 때문이다. 그 매력은, 유려한 웅변이 만들어낸 거짓말들에 자신을 갖다 붙이던 끈을 주권적으로, 말없이 잘라낸 실존만이 지닐 수 있는 매력이다. P.270올랭피아>
마네의 예술에서 가장 기묘한 양상 중 하나는 그의 모작들에 있다. 마네는 그림 소재의 도식적인 부분들을 다른 작품이나 옛날 판화들에서 차용하곤 했다. 우리도 오래전부터 알고 있다시피, <풀밭 위의="" 점심="" 식사="">의 구도는, 마르칸토니오가 판화로 제작한 라파엘로의 <파리스의 심판="">에서 따온 것이다. …… 마네는 신화적 테마에서 출발해 그것을 현실 세계로 옮겨놓았다.파리스의>풀밭>
<올랭피아>에서의 마네는 여전히 한 세계에서 다른 세계로의 전환을 통해 이끌어낼 수 있다고 상상했던 그 효과의 탐색을 이어나가는 중이었다. 하지만 그는 모닝코트처럼 노골적인 방식을 버리고, 벌거벗은 여인 주변에 있는 것들 중에는 <우르비노의 비너스="">의 하녀만을 남겨놓았다. 이렇게 함으로써 효과는 더 옅어졌지만 강렬함은 그대로 남아 있다. 아름다움이 머무는 가운데, 예술이 희소해지는 세상 가운데, “본 그대로”의 급작스러운 출현은 충격적이었다. 그런데 <풀밭 위의="" 점심="" 식사="">에서의 모닝코트들은 압축되었어야 할 것을 분산시켜 버림으로써 결국 힘의 효과를 없애버리고 작품에 경망스러운 느낌을 부여하면서 그 깊이의 연장을 단절시켰다. …… <풀밭 위의="" 점심="" 식사="">에서 구상되었던 노력은 완수되었다. 오랜 준비가 끝을 본 것이다. 빛과 테크닉의 신성한 유희, 이른바 현대 회화가 탄생했다. …… 이 위엄은 더 이상 다른 이유 없이 그저 있는 무엇, 회화의 힘이 폭로하는 그 무엇이 지닌 위엄이다. P.278~280 부르주아지는 일단 세상이 이제 있는 그대로 존재할 뿐이며, 오직 꾸밈없는 인간만이 살아남는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없었다. 우리가 귀족적이다, 왕족답다, 신적이다라고 부르는 면면들에 인간을 결부시키는 인간의 이상화를 포기하기란, 통상 보기보다 어려운 일이다. …… 아무튼 예술만은 신성한 형태로 남아 있는 영예로운 과거의 존재감을 지켜내야 했다. …… 그 형태들은, 물론 폐지되기는 했지만, 기억 속에 현전하고 있는 과거가 그 모습대로 영원히 질서 잡힌 듯 보이는 형태들이었다. 모름지기 예술은 보이는 그대로의 모습들을, 있는 그대로를 배제해야 했다. 그 대신 주권적 존재가 출현해 쩨쩨한 세상의 빈곤을 위로해 줄 수 있다는 연극적 상상력을 발휘해야 했다. 아틀리에에서 스승은 제자에게 모델을 너무 맹목적으로 따라 그리지 말라고 조언하곤 했다…. p.282 그는 귀족계급의 유물들을 거부했는데, 그것들은 이제 부르주아지 전체의 거짓말과 거드름과 다름없게 되어 있었다. 그는 진심으로 자신의 시대에 속하고 싶어 했다. 엄격한 세련미를 지닌 그는, 현실과 허구의 세계를 갈라놓는 그 괴리를 거부했다. 마네 이전에 쿠르베 역시 세계를 있는 그대로 보게 하고자 노력했다. 그의 이러한 노력은 세계를 끊임없이 눈부시게 만들어 현혹하는 방식을 통해 이루어졌다. 그 누구도 쿠르베의 예술에서 발견되는 매혹적인 충만감과 힘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그의 사실주의에서 예술은 아직 고상함의 껍질을 벗어던지지는 못했다. 이러한 예술은 귀족성이 결여되지 않은 멋진 변론과 같다. 쿠르베가 죽은 과거에서 단 한 가지 지켜낸 것이 바로 이 귀족성이다…. 어쩌면 그것은 웅변이라든가 다수의 대중이 만들어낸 부풀린 거짓말과는 전혀 상관없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는 껍질 벗기가 아니며, 마네의 꾸밈없는 세련미와는 다르다. 마네의 세련미는 주제가 무심함 속으로 잠겨듦으로써 오직 회화의 구실 역할만 하도록 축소될 때에야 비로소 나타난다. 더구나 이렇듯 절제된 세련미, 껍질을 벗겨낸 마네의 세련미는 곧 공정성을 얻게 되었다. 이는 무심함 그 자체 속에서뿐만이 아니라, 그 무심함을 표현할 수 있게 하는 능동적 확신 속에서 얻게 된 것이다. 마네의 무심함은 지고의 무심함, 즉 굳이 애쓸 필요도 없이 본디 가혹한, 스캔들을 일으키고 있으면서도 자기가 그 자체로 스캔들거리라는 사실을 굳이 알려 들지도 않는 그런 무심함이다. 스스로 스캔들이 되고자 하는 스캔들에는 절제가 없다. 그렇지만 절제란 스스로 움직이고 능동적으로 개입할수록 더욱 완벽해지는 것이다. 과감한 개입이야말로 마네의 특징이다. 마네는 그렇게 함으로써 지고의 세련미에 도달했다. P.283~284 라파엘로나 티치아노가 스스로 만족해 머물렀던 신화적 세계와 마네의 회화를 확연히 구분 짓는 지점은 바로 그 무심함이다. 여기서 절제된 힘에 대한 긍정은 파괴의 절제된 향유와 맞닿는다. 마네는 그의 뛰어난 솜씨가 그에게 부여한 자유의 침묵에 도달했다. 동시에 그 침묵은 가혹한 파괴의 침묵이기도 했다. <올랭피아>는 흔치 않은 색채들의 유희가 규약에 의한 세계의 부정에 맞먹는 강도를 지녔다는 점에서 세련미의 극치였다. P.284 주제에 대한 무심함은 마네의 특징일 뿐만 아니라 인상주의 전체의 특징이기도 하며, 얼마 안 되는 화가 몇몇을 제외하면 현대 회화 자체의 특징이기도 하다. 모네는 자신이 맹인으로 태어났다가 나중에 시력을 되찾게 되면 좋겠다고 말하곤 했다. 그러면 형태들이나 색채들을 볼 때 사물들의 존재 목적이나 사용법과 무관하게 있는 그대로 보게 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반면 모네나 그의 친구들에게서는, 본래 말하고자 하는 움직임을 이처럼 침묵으로-일종의 작용(operation)으로-, 그리고 그전까지 규약이 옷으로 가려놓았던 알몸으로 환원시키려는 열정은 찾아볼 수 없다. 마법처럼 단호한 정밀함으로 그려진 <올랭피아>에서 포착되는 이 작용은, 마네 고유의 매력이자 그를 그의 계승자들과 확연히 구별 짓는 요소다. 이 작용이 <올랭피아>에 탁월함을 부여했기에, 마네의 사후에 그의 친구들은 바로 이 작품을 루브르에 선사하기로 결정했던 것이다. P.285 그는 여러 다른 방법들의 도움을 받아보려 했는데 목적은 언제나 한결같았다. 그의 목적은 늘 기대를 배반하기였다. 우리는 마르셀 푸르스트가 엘스티르의 방식이라면서 분석하는 대목이 마네의 방식에 적용된다고 단언할 수 있다. 엘스티르는 마네가 아니다. 프루스트로서는 마네 사망 당시 열두 살 밖에 되지 않았었으니 그를 알고 지냈을 리가 없다. 하지만 엘스티르와 마네 사이의 거리는 멀지 않다. 프루스트는 “엘스티르의 성격이 아직 완전히 명랑하지 않고 약간 마네의 영향을 받았던… 시기”가 있었다고 말했다…. P.288 마네가 끊임없이 자신의 화폭 위에 담았던 이 어둠들, 표현된 주제로서의 어둠이라기보다는 일종의 미끄러짐의 이미지 자체라 할 수 있는 이 어둠들 말이다. P.290 <발코니>에는 우리가 볼 때 약간 불편함을 느낄 정도로 시선을 산란시켜놓은 덕분에 얻어진 은밀한 분산효과가 있다. 이 그림을 처음 볼 때 눈에 들어오는 것은 무의미로의 도피뿐이다. 이 그림은 시간을 두고 들여다봐야만, 그리고 넘치는 시선, 즉 베르트 모리조의 커다란 눈에 집중해야만 제대로 보는 셈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처럼 환각적인 이 작품에서는 주제가 다가왔다가 동시에 물러난다고 말해봄 직하다. P.291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마네는 자신의 구도들 중 여백이 부재한 것을 하나 남겼다. <폴리베르제르 바="">는, 넓은 유리 거울의 유희가 반사해대는 빛의 마법과도 같다. 우선 술병들과 과일들, 꽃들이 여자 종업원의 양쪽에서 빛을 똑바로 받고 있다. 종업원은 덩치도 크고 쾌활해 보이긴 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힘이 없어 보이고, 금발 머리 타래 아래 시선은 피로 때문인지 권태 때문인지 흐려져 있다. 그녀 앞에 실제로 존재하고 있는 사람들은 그러나 그저 거울에 비친 휘황찬란한 빛의 반사일 뿐이다. P.293 마네가 인상주의의 기원이라고? 그럴 수 있다. 하지만 그는 인상주의와는 이질적인 어떤 깊이를 유지했다. 마네보다 주제에 대해 책임을 더 강하게 짊어졌던 사람은 없었다. 주제를, 그게 아니라면 의미를, 의미의 저편에 있을 뿐인, 그 자신을 넘어서는 무엇인가의 의미를. P.299 그의 정물화들은 더 이상 과거의 건축물에서처럼 장식을 위해 붙인 부차적인 돌출부 역할을 맡는 데 그치지 않는다. 이것들은 다른 그림들과 마찬가지로 그대로 이미 작품이다. 그 이유는 첫째로, 마네가 인간의 이미지를 장미꽃이나 빵 조각이나 같은 층위의 이미지로 그렸기 때문이다. <아틀리에에서의 점심="" 식사="">에서, 정물은 인물들과 똑 같은 층위로 끌어올려져 있고, 동시에 인물들은 사물들이나 마찬가지의 층위로 깎아내려져 있다. “마네가 무엇보다도 우선 위대한 정물화가임은 우연이 아니다”라는 말로의 문장은 이러한 의미들의 상호성에 의해 정당화되며, 오직 이 상호성 내에서만 그러하다. P.300 아틀리에에서의>폴리베르제르>발코니>올랭피아>올랭피아>올랭피아>풀밭>풀밭>우르비노의>올랭피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