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네 그림에서 찾은 13개 퍼즐 조각 (푸코 바타이유 프리드의 마네론 읽기) - 박정자

마네 그림에서 찾은 13개 퍼즐조각 - 푸코, 바타유, 프리드의 마네론 읽기

 푸코가 보기에 마네는 그림이 벽이나 화폭 등 어느 특정의 공간 속에 그려졌다는 사실을 애써 감추는 콰트로첸토(15세기 이탈리아의 예술운동) 이래의 규칙을 깨트린 사람이다. 콰트로첸토 이래의 서양 미술의 규칙은 크게 보아 원근법이다. 원근법은 2차원의 평면 위에 마치 3차원의 세계가 펼쳐지는 듯한 환상을 주는 일종의 눈속임이다. 사람들에게 환영(illusion)을 주는 그림이라 하여 미술사적 용어로 환영주의 미술이라고 한다. 마네는 원근법을 기초로 하는 환영주의를 거부하고 화폭의 물질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그림을 그렸다.

 푸코는 그것을 ‘공간처리’, ‘조명의 문제’, 그리고 ‘관객의 자리’라는 세 가지 테마로 나누어 분석했다. ‘공간처리’에서는 첫째, 장방형의 화폭을 그림 안에서 다시 반복하는 방식이다. 예컨데 <오페라 극장의="" 가면무도회="">에서 2층 발코니의 난간을 가로로 길게 화면 윗 부분에 배치한 것은 화폭의 형태인 장방형을 그림 안에서 다시 재현하고 있는 것이다. 그림은 4학형의 프레임 안에 그려진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마네는 이처럼 수직과 수평의 선들을 그림 속에 자주 그려 넣었다. 쉽게 말하면 네모난 종잇장 위에 종이의 사각형을 닮은 가로 세로선을 한 번 혹은 두 세번 더 그려 넣었다는 것이다.오페라>

 두 번째는 그림의 깊이를 없애는 방식이다. 역시 <오페라 극장의="" 가면무도회="">를 보면 전경에 벽이 가까이 있고, 그 좁은 공간에 사람들이 가득 들어차 있어서 그림에 깊이라고는 없다. 나무가 두 줄로 고르게 심어진 산책길 너머로 광활한 평야와 하늘이 보이는 티치아노의 <오르간 연주자와="" 비너스="">를 이 그림과 비교해 보면 그림에 깊이가 없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회화란 얇은 종이 혹은 캔버승의 평면에 불과한 것인데, 거기에 3차원적 공간을 깊이 판다는 것은 거짓에 불과하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 마네는 이렇게 납작하고 답답한 그림을 그렸던 것이다.오르간>오페라>

 ‘조명의 문제’에서는 전통 서양회화에서 사용했던 내적 조명의 방식이 아니라 외적 조명의 체계를 사용했다. 우선 내적 조명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보자. 전통 서양회화는 인체나 사물에 입체감을 주기 위해 그림 속의 빛, 즉 내적 조명의 방법을 사용했다. 평면에 그려진 그림이 부피감을 갖는 것은 음영의 효과인데 음영은 반드시 어디에선가 빛이 오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전통 서양 회화를 자세히 보면 그림의 장면 안에 반드시 광원이 있다. 어디선가 빛이 들어오는 부분이 있다는 이야기다. 인물의 그림자, 음영, 양각, 입체감 같은 것이 모두 이런 조명의 효과이다. 콰트로첸토 초기, 특히 카라바지오에서 이런 방법적 빛의 효과가 강조되었다. 그림의 장면 자체 안에 광원이 있는 것, 그것이 내적 조명이다. 

 그러나 그림의 깊이가 한 갓 환영이고 가짜였듯이 그림 속의 빛 또한 인위적인 거짓말에 불과하다. 캔버스가 그냥 사각형의 평면에 불과한데 그 안에 어디서 빛이 온다는 말인가? 빛은 캔버스 밖에서 오는 것일 뿐 그림 속의 빛이란 있을 수 없다. 이것을 곧이 곧대로 표현하기 위해 마네는 아무런 광원도 없는 그림, 관객이 시선을 줄 때 비로소 조명등에 의해 비쳐지는 그림을 그렸다. <발코니>의 실내와 <올랭피아>의 배경이 캄캄하게 처리된 것은 바로 그것 때문이었다.올랭피아>발코니>

 그림은 평면 위에 그려진 것이다, 라는 것이 회화의 진실이다. 회화는 작품이기 이전에 우선 액자와 캔버스로 구성된 물질이다. 물질로서의 그림은 아틀리에 창 밖의 햇빛 또는 실내의 전등 불빛처럼 화폭 밖으로부터 오는 실제의 빛을 받을 뿐, 그 이외에는 아무런 빛도 없다. 마네는 처음으로 이 진실을 그림으로 표현했다. 내적 조명이 없으므로 당연히 그림은 양감이나 입체감이 없이 납작한 그림이 된다. <올랭피아>의 납작한 나체, <피리부는 소년="">의 납작한 바지통이 바로 내적 조명 부재의 결과이다. 피리부는>올랭피아>

 마지막으로 푸코는 마네의 마지막 걸작인 <폴리-베르제르 바="">에서 ‘관객의 자리’에 대한 그의 야심찬 실험을 발견한다. 서양 회화는 감상하기에 좋은 이상적인 자리를 언제나 지정해 놓았다. 이 유일하고도 이상적인 자리만 벗어나면 그림은 삐뚜러지거나 일그러져 보인다. 그러나 화폭은 그 앞에서 관람객이 이리저리 자리를 이동할 수 있고 또 뒤로도 돌아가 볼 수 있는 장방형의 캔버스가 아니던가. 이런 물질성을 애써 무시하고, 오로지 정 중앙의 앞에서만 감상할 수 있는 그림을 그린 것은 부자연스러운 일이 아니던가.폴리-베르제르>

 원근법적 사고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폴리-베르제르 바="">는 이런 관점에서만 그 수수께끼가 풀린다. 카운터 뒤에 똑바로 앞을 바라보고 서 있는 여급의 뒤로 손님이 가득 찬 넓은 홀의 모습이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그것은 거울에 비친 모습이다. 그러나 정작 더 이상한 것은 그림의 오른 쪽 거울 안에 손님과 대화하고 있는 여급의 뒷모습이 비스듬히 비치고 있는 것이다.폴리-베르제르>

 그것은 과학적 상식으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상이다. 거울은 그녀의 뒤에 수평으로 놓여져 있으므로, 정면을 향하고 있는 여급의 거울 속 모습은 온전한 뒷면이어야 하고, 그녀 바로 앞에 어떤 사람이 서 있다면 거울 속에서는, 그녀의 뒷모습은 물론 앞의 사람도 보이지 않아야만 한다. 거울에 화가의 모습이 비치지 않는 것을 보면 아마도 화가의 자리가 바로 이 지점이었을 것이다. 이것이 별로 전문적인 지식을 요하는 것도 아닌 일상적인 광학의 상식이다. 

 그런데 앞모습이 정면을 향하고 있는 여급의 오른쪽 뒤로 그녀의 뒷모습이 거울에 비스듬히 비치고 있는 게 아닌가. 게다가 그 앞에는 고객으로 보이는 남자의 모습까지 비쳐져 있다. 이것은 화가가 앞에서 한 번 그리고, 자리를 이동해 또 옆으로 한 번 그린 후, 두 그림을 한데 합쳤을 때만 가능한 그림이다. 화가의 자리는 그대로 관객의 자리이다. 그렇다면 관객은 정 중앙의 앞에서도 볼 수 있고, 왼편으로 조금 비켜 서서 볼 수도 있다.

 그림 감상의 유일한 이상적인 자리를 상정했던 서양 미술의 전통에서 이것은 경천동지할 새로운 관점이 아닐 수 없었다. 미술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 나아가 사람들의 인식 자체를 뒤흔드는 사건이기도 했다. 유일하게 하나의 해석만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원근법적 인간의 사고가 여러 개의 해석도 가능하다는 다원적인 사고로 전환되는 계기를 마련했기 때문이다. P.13~17

바타이유도 마네로부터 현대적인 회화가 시작되었다고 생각한다. 기존의 생산중심적 정체경제학을 뒤집어 인간과 세계가 존속하기 위해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생산과 축적이 아니라 소비와 상실이라고 설파했던 전복적 철학자 바타이유는 2만년 전에 만들어진 라스코 동굴 벽화야말로 놀이를 통한 인류의 진정한 탄생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인간에게 근본적인 문제는 최소한의 욕구 충족이 아니라 비생산적인 소비 즉 ‘사치’이므로, 낭비야말로 문명의 해결의 열쇠라고 생각했던 그에게 있어 예술은 바로 낭비의 부분이다. 그림 또는 예술은 아무런 생산과도 연결되어 있지 않다는 점에서 순전히 무상적인 행위이고 낭비이다. 2만년 전에 힘들게 바위를 쪼아내 동물의 모양을 만들고 거기에 색채를 입힌 행위는 인간의 생명 유지를 위한 노동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그것은 글자 그대로 노동력의 낭비, 자원의 낭비일 뿐이다. 이 쓸데 없는 낭비적 행동이 바로 예술의 원초적 기원이다. 

 무상적인 놀이를 발견하고 난 후 인간의 행동은 두 개의 영역으로 분리된다. 생산을 위한 소비의 영역과 생산으로 이어지지 않는 소비의 영역이 그것이다. 생산적 소비의 영역은 합리성과 앎이 지배하는 속의 세계이다. 비생산적 소비의 영역은 합리성이 통하지 않고 세속적인 앎이 전혀 힘을 쓰지 못하는 불가해한 성의 세계이다. 예술의 기원은 이처럼 앎이 아닌 세계 즉 비-앎의 세계이다.

 그러나 라스코 벽화 이후의 미술은 원래 미술에 부여했던 목적에서부터 점차 멀어지게 된다. 그림은 단순히 눈에 보여지는 어떤 것을 만든다는 최초의 기능에서 벗어나 뭔가를 의미하게 되었다. 뭔가를 의미한다는 것은 언어적인 기능이다. 결국 미술은 문학에 종속되고, 그림 자체의 기법보다는 주제가 더 중요하게 되었다. 마네 시대에 지배적인 미술 사조였던 아카데미즘은 회화에 대한 인문주의적 이론의 산물이다.

 푸코가 마네의 그림에서 <폴리-베르제르 바="">를 중점적으로 분석했다면 바타이유는 <풀밭에서의 점심="">을 집중적으로 논한다. <풀밭에서의 점심="">에서 다소 의아스러운 인물들의 모임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사람들은 오른쪽 남자가 앞으로 내민 뾰족한 손가락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찾아내려고 온갖 박식한 지식을 다 동원해 본다. 전통적인 회화에서 뾰족한 손가락의 제스처는 반드시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마네의 그림에서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거기엔 아무런 의미도 없다. 풀밭에서의>풀밭에서의>폴리-베르제르>

 <풀밭에서의 점심="">은 티치아노의 <전원 음악회="">에서 옷입은 두 남자와 옷 벗은 두 여자라는 주제를 따왔고, 라파엘로의 <파리스의 심판="">에 바탕한 라이몬디의 판화에서 세 사람의 자세를 그대로 따왔는데, 마네가 따로 거기에 무슨 의미를 부여했겠는가? 회화는 뭔가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그대로의 회화라는 것을 말하기 위해 마네는 이런 변용화를 그린 것이다.파리스의>전원>풀밭에서의>

 이것을 바타이유는 ‘회화의 침묵’이라고 말한다. 마네는 무언가를 말하는 회화가 아닌 ‘회화의 침묵’을 원했다는 것이다. 마네는 시와 미술의 끈을 결정적으로 잘랐다. 이렇게 ‘담론의 기능’에서부터 해방된 회화는 자율적인 예술이 된다. 그는 읽을 수 있는 회화를 볼 수 있는 회화로 대체했다. 그의 인물의 자세는 뭔가를 의미하지 않고, 몸짓들은 아무것도 지시하지 않으며, 구도는 그 어떤 스토리에도 봉사하지 않는다. 

 바타이유는 마네가 회화적 혁명을 달성한 것이 아니라 예술의 본질, 즉 라스코 동굴 벽화에서 시작되었던 본질을 작동시켰다고 말한다. 그의 회화와 함께 예술은 그 동안 얼마간 은폐되었던 본질에 도달했다. 고대 그리스 이래 회화는 실용성이나, 군주 혹은 교회에 너무 많이 봉사했다. 권력, 담론, 관습에 종속된 예술은 더 이상 엑스터시, 성스러움, 혹은 지상권으로 향하는 왕도가 아니게 되었다. 그러나 예술은 합리적 이론이나 앎으로 설명되는 세계가 아니라 그냥 뭔지 알 수 없는 황홀한 법열의 순간일 뿐이다.

 마네와 함께 회화는 알레고리가 되기를 그쳤다. 오랫동안 감동으로 교훈과 즐거움을 주는 것이 회화의 임무로 여겨졌었다. 정념은 회화의 주제만이 아니라 그 목적성 자체였다. 그림은 관객의 영혼을 움직여야 하고, 감정이 생겨나게 해야 한다는 것이 사람들의 상식이었다. 그런데 벙어리처럼 아무것도 전달하지 않는 그림 앞에 섰을 때 관객들은 실망하고 분노했다. 바타이유가 보기에 이것이 마네의 스캔들의 진실이었다.

 바타이유도 푸코도 마네가 회화로서의 회화에 충실한 화가였으며, 그것이 그의 현대성이었다고 말한다. 어떤 현대성인가? P.18~21

앤디 워홀은 “내 그림 뒤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말했는데 100년 전에 이미 마네는, 그림 뒤에 아무것도 없다는 것, 그림은 그저 단지 채색된 평면의 오브제일 뿐이라는 것을 그림의 내용 자체 안에 집어 넣었다. 물론 그는 선과 면과 색채로 환원되는 비재현적 회화를 고안해 내지는 않았다. 그의 그림은 모두 재현적이다. 그러나 그는 재현의 기법을 내리누르던 규약들로부터 회화를 해방시킴으로써 재현과의 단절을 위한 조건을 마련했다. 마네 덕분에 회화는 20세기초의 추상미술을 거쳐 오늘날에까지 이를 수 있었다.

 특히 <폴리-베르제르 바="">에서 시도한 관객의 자리 이동은 모든 것이 탈중심화하여 중심과 위계질서가 사라지고, 인간이 더 이상 중심을 차지하는 주체도 아니게 된 현대의 포스트모던적 현상을 예고하고 있어서 흥미롭다. 그것이 마네의 현대성이며, 인문학이 미술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P.22폴리-베르제르>

  • 푸코의 마네론

푸코는 마네가 공간처리, 조명의 문제, 관객의 자리 등 세 가지 점에서 혁명적인 변화를 이루었고, 그것이 20세기의 현대미술을 여는 계기가 되었다고 말한다.

 마네는 우선 화폭이 수평 수직의 평면적 사물이라는 것을 강조했다. <오페라 극장의="" 가면="" 무도회="">에서 벽의 기둥과 발코니는 수직과 수평의 선을 형성하면서 화폭의 장방형을 그림 안에서 다시 반복하고 있다. 전경에 가득 들어찬 사람들은 그림에서 깊이를 제거하여 한 번 더 화폭의 평면성을 강조한다. <막시밀리안의 처형="">도 마찬가지다. <뛸르리 공원의="" 음악회=""> 등 8개 그림을 예로 들며 푸코는 마네가 그림의 공간 처리를 통해 면적, 높이, 넓이 같은 화폭의 물질적 성질을 그대로 보여주었다고 말했다. 뛸르리>막시밀리안의>오페라>

 두 번째로는 내적 빛의 말살이다. 마네의 그림에는 내적 빛이 없다. 그림의 내부에서 비치는 빛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외부의 실제적 빛을 이용했다. 그의 그림에는 화폭의 외부에서 수직으로 쏟아져 내려와 그림 위를 눈부시게 골고루 정면에서 비춰주는 빛만 있을 뿐이다. 그 결과 이탈리아 회화에서처럼 장엄한 수사와 매혹이 관객을 장면 속으로 인도하는 것이 아니라 관객이 장면에서 완전히 배제된다. <피리부는 소년="">등 4개의 그림이 그러하다.피리부는>

 마지막으로, 관객의 자리는 한 곳에 고정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교묘한 거울의 조작을 시도했다. ‘관객의 자리’ 문제에서는 단 하나의 그림만을 세밀하게 문법적으로 해석하고 있다. <폴리-베르제르 바="">가 바로 그것이다. 푸코는 이 작품이 마네 평생의 모든 실험이 압축적으로 들어 있는 가장 중요한 그림이라고 생각한다.폴리-베르제르>

 푸코는 이렇게 공간, 조명, 관객의 자리라는 세 항목의 분석을 위해 마네의 작품 13점을 선택했다. 그 13개의 퍼즐 조각을 맞춰보면 우리는 마네라는 인물의 수수께끼를 풀 수 있을 것이다. P.63

 환영주의를 거부하면 남는 것은 화폭의 물질성인데, 화폭의 물질성이란 구체적으로 화폭이 사각형, 2차원의 얄팍한 평면이라는 이야기이다. 사각형은 다름 아닌 가로와 세로의 교차 축이므로, 수직과 수평의 선을 강조하거나 그림에서 깊이감을 제거하면 그것이 바로 화폭의 물질성을 드러내는 일이 될 것이다. 또 캔버스는 씨줄과 날줄이 짜여진 헝겊이다. 그러므로 씨줄과 날줄을 닮은 가느다란 가로 세로 줄들을 무수하게 교차시켜 그리면 그것이 또한 캔버스의 물질성에 대한 환기가 될 것이다. P.65

<오페라 극장의="" 가면무도회="">에서 이층 난간의 굵은 들보로 화면은 커다란 장방형과 위의 가느다란 장방형으로 나뉜다. 여기서도 그림은 캔버스의 물질적 조건인 장방형을 다시 반복하고 있다. 전경의 앞 부분까지 가득 들어찬 사람들로 화면은 빽빽하고 답답하다. 한 마디로 깊이가 없고 평면적이다. ‘캔버스는 평면이다’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마네의 전략이라고 푸코는 말한다. 화면의 상단에서 아래로 내려와 흔들거리고 있는 두 개의 발은 어쩐지 비현실적이어서, 이것은 현실적 지각의 공간이 아니라 다만 화폭의 위에서 아래로 한 없이 확장되고 반복되는 평면의 유희일 뿐이다,라고 말해주는 듯하다. P.71 여기서도 우리는 마네의 은밀한 실험정신을 볼 수 있다. 르네상스 이래 4백년간 서양 회화를 지배했던 원근법을 사용하지 않고 굳이 콰트로첸토 이전의 회화 기법으로 돌아간 것은 원근법적 질서가 지배하는 서양 회화의 전통에 대한 일종의 항의 표시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소녀의 머리 위로 발돋움하거나 아니면 그림을 한 바퀴 빙 둘러 뒤로 돌아가야만 우리는 그 장면을 볼 수 있을 것이다. 화푝이 표면과 이면을 갖고 있는 평면이라는 것을 마네는 이런 식의 그림 구도로 보여 주었다. 이때까지 그 어떤 화가도 화폭의 표면과 이면을 가지고 유희를 한 화가는 없었다. 그의 그림은 관객으로 하여금 자리를 이동해 그림의 뒤로 돌아가 마침내 문제의 장면을 보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한다.  화폭의 앞 뒷면의 성질을 가지고 교묘한 놀이를 하는 마네의 유희는 화폭의 물질성을 담보하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가시성을 통한 비가시성의 드러냄이라는 야심찬 전략도 수행한다. 화폭 안에서 당연히 비가시적일 수밖에 없는 어떤 것을 인물들의 시선을 이용해 우리에게 지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시성을 통해 비가시성을 보여주는 방식을 그림 자체 속에서 작동시킨 화가는 회화의 역사상 마네가 처음이었다고 푸코는 말한다. P.91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의 건축가 알베르티에 의해 창안된 원근법은, 가까이 있는 물체는 크게 보이고 멀리 있는 물체는 작게 보인다는 시각적, 광학적 원리에 근거한 것이다. 두 줄로 제일 앞의 나무를 가장 크게, 그 안쪽으로 다음 나무들을 차츰 작게 그려서 그 끝 부분을 연결한 대각선이 한 데 모일 때까지 그리면 화면 속에는 아득하게 멀리 뻗은 가로수 길이 생긴다. 이것이 원근법이다. 양쪽 나무의 선들을 죽 이어서 만나게 되는 지평선의 한 점이 소실점이다.  원근법의 일부이기는 하지만 단축기법이라는 것도 있다. 크기의 비례를 조정하여 실제와 같은 효과를 내는 것이다. 예컨대 누워 있는 사람을 머리 부분에서 바라보고 그릴 때 머리는 크게 그리고 가슴과 얼굴은 아주 작게 머리에 달라붙어 있는 듯이 그리는 것이다. 실제 인체의 비례와 상관없이 어느 부분을 짧게 축소해 그림으로써 현실 속에서 바라보는 것과 같은 환상을 주는 것, 그것이 단축 기법이다.  알베르티는 <회화론>에서 원근법을 제창했지만, 빛의 재현 방법과 채색법에 대해서도 아주 중요한 견해를 제시했다. “색은 빛과 어둠에 따라 밝아지거나 어두워진다”라는 그의 말이 서양회화사에서 명도에 대한 최초의 본격적인 논의였다. 소위 색채 원근법이다. 눈과 대상 사이의 공기층이 빛에 의해 명도와 색상이 달라진다는 광학 이론을 적용하여 화면의 근경은 강하고 선명하게, 중경은 중간 정도, 원경은 흐리고 엷게 칠하면 이것 역시 그림이 안쪽으로 깊숙이 파여 들어간 듯이 보이게 된다.  인체나 사물의 입체감도 색상의 차이나 명암으로 표현할 수 있다. 예컨대 같은 색이라도 팔의 양쪽 부분을 진하게, 중간 부분을 흐리게 처리하면 도톰한 팔의 입체감을 얻을 수 있다. 이처럼 음영을 통해 인물에 입체감을 주는 방식을 모델링이라고 한다. 여기서 빛의 문제가 제기된다. P.93 회화론>오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