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러 넘버 3

크리스티안 페촐트의 원소 3부작 마지막 장편.
어파이어에서는 거대한 산불이 마을을 덮친다. 운디네는 독일 설화 속 물의 정령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 그렇다면 바람은? 불과 물은 눈에 보이지만 바람은 그렇지 않다. 불은 불로써, 물은 물로써 그 존재를 스스로 드러내지만 바람은 커튼이 춤을 추거나, 잔디가 드러눕는 식으로 그 존재를 암시할 뿐이다.
라우라는 남자 친구와 중요한 사교 모임에 참여하지만, 무언가 불편한 기색을 보이더니 이내 집에 가겠다고 한다. 남자친구는 그런 라우라를 못마땅해 하지만, 하는 수없이 그녀를 데려다주기로 한다. 그리고 가는 길에 사고로 죽는다. 라우라는 기적적으로 큰 부상 없이 살아남는다. 그리고 중년 여성 베티에 의해 구조를 받게 된다. 라우라는 무엇에 홀린 듯 집에 가지 않고 그녀와 있기로 결심한다.
베티는 자살한 딸 옐레나와 라우라를 점점 동일시한다. 옐레나가 입었던 옷을 입게 하고, 피아노를 쳐달라고 부탁한다. 라우라는 이에 기꺼이 응하지만 자신이 베티에 의해 대체되고 있음은 나중에 가서야 알게 된다. 라우라는 이에 배신감을 느끼고, 곧바로 아빠를 불러 일상으로 돌아온다.
베티의 가족은 라우라의 마지막 졸업 발표회 자리에 참석한다. 라우라는 모리스 라벨의 ‘울 모음곡 M. 43’ 중 세 번째 곡인 ‘바다 위의 작은 배(Une barque sur l’océan)’를 연주한다.
베티는 옐레나의 죽음 이후 모든 게 망가져버렸다. 집의 수도꼭지는 물이 새고, 식기세척기는 말을 듣지 않는다. 울타리를 흰색으로 새로 칠하지만 정원의 꽃은 시들기 직전이다. 피아노는 오래되어 조율이 필요하다. 옐레나의 죽음 이후로 이 가족은 자신들을 돌보지 않은 채 한없이 부식되고 바래가고 있었던 것이다.
라우라가 오고 나서 집은 조금씩 활기를 띤다. 한동안 집을 들르지 않았던 남편과 아들도 함께 식사를 하는 일이 늘어나고, 베티의 가족은 옐레나가 죽기 이전으로 돌아가려는 듯 보인다. 그러나 아들 00은 자신들이 라우라를 이용하고 있음에 불편한 감정이 들고, 이내 라우라에게 사실을 고백한다.
사실을 알게 된 라우라는 (옐레나의 방이었던) 방문을 처음으로 걸어잠근다. 같은 바람을 마시기를 거부하는 것이다. 같은 공기를 마시는 줄 알았던 그들에게 배신감을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연주회에 그들이 왔다는 걸 안 라우라는 기뻐하는 듯했다. 집에 돌아와 의미심장한 미소를 보였기 때문. 첫 장면과 마찬가지로 창문은 열려 있고 바람이 불고 있었다.
라우라가 베티에게 이곳에서 지내고 싶다고 한 것이 톰소여 이야기와 맞물리는 지점이 아닐까? 오히려 체념하고 있을 때 세상이 그녀에게 원하는 바를 들어주었음을 간접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닐까? 그럼에도 초반부에서 라우라가 보인 의뭉스러운 태도는 분명 아쉬운 점으로 작용한다.
- 라우라의 마지막 웃음은 어떤 의미인가?
- 왜 주변에 사람들이 기웃거린 걸까?
- 아빠가 왜 위로 가지 말고 아래로 가라고 했을까?
- 과연 진짜 트라우마 때문일까?
- 톰소여 이야기는 어떤 맥락을 담고 있을까?
- 바람은 어떤 의미로 작용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