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한 나무의 씨앗
초반부의 아버지가 너무 온화했었던 것. 총을 잃어버리기 전에는 심지어 자식에게 무심할 정도의 아버지였기 때문에 딸들이 그에게 PTSD를 가진 듯하게 반응하는 후반부의 설정이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총을 훔친 이유도 이해가 가지 않았고, 그것을 마지막까지 숨기려는 것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감정선을 따라가지 못했다. 아버지가 난폭해서 총을 뺏은 게 아니라 총을 뺏고 나서 아버지가 난폭해진 듯한 느낌을 받았다. 물론 난폭함에 대한 정당화는 아니지만, 아버지가 결국 극의 전개를 위한 하나의 장치로서 소비되었다는 점에서는 지극히 아쉽다.
이러한 서사의 비약이 비단 내가 맥락에서 벗어난 존재이기 때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엄마가 산탄총에 맞은 딸의 친구를 치료해주는 장면이 영화의 빈약한 서사보다 훨씬 더 강력했다는 점에서 나머지 2시간 30분 여의 아쉬움을 토로하지 않을 수 없게끔 만든다.
시대적 의미가 깊은 영화에서 서사와 형식을 논하는 것은, 애석하게도 그것이 오히려 본질을 흐리게 만든다면 차라리 존재하지 않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