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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ead 마술적-사실주의란-무엇인가

// published: 2026-08-27 · 3 min read

tags: [series, 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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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모레 「백년의 고독」 시즌 2가 마지막 화를 앞두고 있다. 지난 주말 몰아보는 동안,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마술적 사실주의가 영상으로 생생히 펼쳐지는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했다. 시즌 1을 책 속 묘사들이 구현되는 방식에 감탄하며 보았다면, 시즌 2는 작품이 품은 주제의식 안으로 더 깊이 들어가 콜롬비아의 비극적인 역사를 지켜본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크다. 이 시리즈를 통해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마술적 사실주의를 전보다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고, 또 그러고 싶어졌다.

(1) 그 시절 그들에게는 과학의 발전이 마법처럼 다가왔을 것이다. 시내 곳곳에 가로등이 설치되어 밤에도 거리가 환하게 빛나고, 거대한 고철 덩어리가 증기를 내뿜으며 빠른 속도로 달려오고, 축음기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처음 들었을 때. 그것을 처음 마주한 이들에게는 아주 잠깐이라도 마법이라고 믿는 편이 더 합리적인 판단이었을 테다.

그 불운한 사업이 남긴 건 프랑스 여성들이 들여온 변화의 바람뿐이었다. 처음엔 호기심에 이끌려 금지된 거리를 찾는 손님이 늘었고 ,심지어는 지체 높은 여자들이 축음기를 가까이서 보려고 남장을 하고 거길 갔다는 소문도 돌았다. 하지만 너무 가까이서 너무 많이 관찰한 나머지 그들은 결론을 내렸다. 그것은 마법의 맷돌이 아니라 기계적 속임수에 불과해 악단의 연주만큼 가슴 저미는 감동도 없었고, 인간미도 없었으며, 일상의 진실로 가득 차지도 않았다고 말이다.

(2) 시즌 2에서 가장 슬프고 아름다웠던 장면은 6화의 총격 장면(이 장면은 1928년 콜롬비아에서 실제로 벌어진 바나나 학살 사건을 바탕으로 한다)이었다. 작중에서는 총성이 가득한데도 아무 일 없다는 듯 움직이지 않는 관중을 보여줌으로써, 그들이 총에 맞아 쓰러지는 모습과 피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 이상으로 학살의 충격과 비현실성을 극대화한다. 이처럼 그들의 현실은 현실적으로 표현하기에는 너무나 비현실적이고, 비극적이고, 슬프기에 마술의 힘을 빌 수밖에 없었고, 그리하여 마술적 사실주의는 하나의 필연으로 작동했을지도 모른다.

원작을 읽은 지 너무 오래되었고, 그 한 번 읽었던 것조차 제대로 읽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어 다시 읽어볼 생각이다. 이 모든 영상이 반세기 넘게 전에 쓰인 책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경이롭다. 어떤 작품들은 너무나 매력적이어서 다른 작품을 여러 권 읽는 것보다 그 작품을 여러 번 반복해 읽는 편을 선택하게 만든다. 게다가 나는 책 한 권을 한 번 읽어서 이해하는 종류의 사람이 아님을 이제는 정말 알아차렸기에... 새 책을 읽고 싶다가도 수박을 최선을 다해 베어 물지 않아서 빨간 과육이 그대로 남았는데도 새 수박을 집어 드는 것 같아 주저하는 마음도 있다.

마침 최근에 본 영화들이 현실과 상상의 경계를 오가는 종류(「그랜드 투어」, 「운디네」, 「키메라」, 「미아즈마 캠프에서 생긴 일」, 그리고 「뭉치」...?)여서 현실 감각을 잃어가고 있다. 그렇다고 이들을 모두 마술적 사실주의라 부르기는 어려울 것이다. 초현실주의인지, 혹은 다른 무엇인지 구분할 능력이 내게는 없고, 그래서 더 알아보고 싶다는 생각에 마술적 사실주의에 대한 담론을 담은 책 『마술적 사실주의』 번역본을 읽어보려 했지만, 절판되어 무려 중고가가 3만 원에 달한다. 졸업한 학교 도서관 출입증을 갱신하는 게 더 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잠시 보류 중. 킨들로 영어 원서를 읽을 수도 있겠지만, 시간이 두어 배는 더 걸리겠지. 내 머릿속은 이런 자잘한(그러나 나에겐 전혀 그렇지 않은) 고민들로 가득한데, 나이를 점점 먹어가는 와중에 이래도 되나 싶으면서도 이럴 수밖에 없음을 잘 알아서 요즘은 굳이 자책하지 않고 차라리 즐기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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