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상스 미술
르네상스는 14-16세기 사이에 있었던 문예부흥운동으로, 프랑스어로 ‘재생’, ‘부활’을 의미한다. 중세시대의 신 중심의 세계관에서 인간중심 세계관으로 바뀌면서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문화를 부활시키고자 시작되었다. 르네상스가 이탈리아 피렌체, 시에나, 베네치아 등에서 시작된 배경은 다음과 같다.
역사적 배경
교역을 통해 부를 축적하는 신흥 자본 계층인 부르주아가 출현했다. 대표적으로는 메디치 가문이 있다. 이들에 의해 중세의 봉건주의적 장원 경제가 붕괴되고 근대 자본주의가 생성되었다. 이에 따라 신흥 도시가 생겨나고 근대 시민 사회가 성립되었으며 그들의 인문주의 의식으로 인해 개인이 삶의 주체가 되는 자유 의식이 자라나게 되었다. 특히 이탈리아에서 세계와 종교에 대해 이전과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게 되면서 가장 먼저 변화가 시작되었다.
조형적 특성
이러한 조건들을 통해 경험과 실험을 토대로 자연을 관찰하는 새로운 학풍이 불기 시작했다. 예술적으로 르네상스는 문화적 미술적 부흥을 의미했으며, 특히 고대 그리스 로마 문화를 부활시키려는 의식적인 운동이었다. 고전주의의 부활, 인문주의, 자연의 재발견, 개인의 창조성 등을 특징으로 하는 르네상스 정신이 미술에서 두드러졌다. 당시의 미술은 과학의 차원으로까지 간주되었으며, 자연을 탐구하는 수단인 동시에 발견의 기록이었다. 따라서 미술은 가시적인 세계에 대한 관찰에 바탕을 두고 ‘원근법’ 등의 수학적 건축과 조각에 관한 연구에 몰두하면서 시작되었다. 이들이 피렌체로 돌아와 자신들의 고전지식을 이용한 작품 활동을 시작함에 따라 고대 세계의 미술이 다시 빛을 보게 되었던 것이다. 특히 투시원근법과 명암법의 발명은 르네상스 시대의 세계에 대한 ‘객관적 대상화’를 잘 보여준다. 마사초 이후 1435년 피렌체의 화가 레온 바티스타 알베르티는 그의 저작 《회화론》에서 원근법의 규칙을 정식화했고, 이는 명암법과 함께 근대에 이르기까지 서구 회화의 중심 원리가 되었다.
원근법은 사람의 눈에 보이는 3차월 공간의 물체나 공간을 2차원의 평면 위에 거리감과 깊이감을 주어 입체적으로 표현하는 방법을 말한다. BC 5세기 그리스 화가인 폴리그노토스가 원근법을 사용했듯이 완전히 새로운 것은 아니며,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미술가들에 의해 시작되었다. 고대부터 사용한 원근법은 조형성과 장식성을 중시한 중세에는 거의 사용되지 않다가 르네상스 시대에 체계화되었다. 1417년 무렵 건축가 브루넬레스키가 최초의 실험적 시도로써 투시 원근법과 소실점에 대한 과학적 접근을 완성했으며, 이후 알베르티가 《회화론》에 원근법의 개념을 체계화하면서 회화에서 마사초의 《성삼위일체》에서 최초로 실현되었다.
서양 회화사에 끼친 영향
르네상스 시대에서의 미술에 대한 일련의 과학적인 접근은 미술의 지위를 격상시킴과 동시에 확고히 했다. 특히 원근법을 비롯해 르네상스 시대에 갖추어진 문법들은 반세기 가까이 불문율처럼 여겨져 그 영향력은 실로 지대하다. 이는 19세기 마네가 나오기 전까지 지속되었다.
원근법이 발견된 이래로, 화가들은 화면에 자신이 원하는 만큼의 깊이감과 공간을 자유자재로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원근법은 2차원의 평면에 3차원적인 공간을 재현하는 가장 기본적이고 효과적인 수단이다. 바꾸어 말하면 원근법은 전통적인 회화가 3차원적 재현이 실제로는 2차원 평면 임을 숨기는 방법이었다. 그런데 푸코에 의하면 돌연 19세기의 마네는 그 속임수에 호응하는 순진함을 중지한 것이다. <뛸레리 공원의="" 음악회="">(1862)와 <오페라에서의 가면무도회=""> (1873-4)에서는 화면의 절반을 수많은 인물들로 가득 채워 밀집된 인물들 이 마치 벽처럼 느껴지도록 만들었다. <막시밀리안의 처형="">(1868)에서는 화면 중간에 실제로 넓은 벽을 그려 넣어 깊이감을 제거함으로써 그림이란 하나의 평면 위에 그려진 사물이라는 사실을 암시한다. 이러한 사물로 서의 그림이라는 의미는 결국 '캔버스의 물질성'에 대한 자각을 말하는 것이다. 마네가 이루려 한 전통 회화의 전복은 현대 미술의 신호탄이 되었다.막시밀리안의>오페라에서의>뛸레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