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밤
Quotes
“내가 생각해봤는데 이 비유는 모든 사람에게 적용시킬 수 있을 것 같아. 분자에 그 사람의 좋은 점을 놓고 분모에 그 사람의 나쁜 점을 놓으면 그 사람의 값이 나오는 식이지. 아무리 장점이 많아도 단점이 더 많으면 그 값은 1보다 작고 그 역이면 1보다 크고.”
수환은 처음 영경을 만나던 봄날을 생각했다. 웨딩홀에서 사람들에 섞여 있을 때부터 그는 영경을 주목하고 있었다. 한 달 동안 노숙생활을 했을 때 본 여자 노숙자들을 생각나게 하는 얼굴이었다. 비록 화장을 하고 있었지만 영경의 눈가는 쌍안경 자국처럼 깊게 패였고 볼은 말랑한 주머니처럼 늘어져 있었다. 재혼한 친구의 집에 몰려가 술을 마실 때 그는 영경과 가까운 자리에 앉았다. 술을 마실수록 영경의 얼굴은 붉어지기보다 회색에 가까워졌고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 막 마르기 시작하는 석고상처럼 보였다. 가끔 그녀는 취한 눈으로 그의 눈을 빤히 들여다보곤 했다. 취한 그녀를 업었을 때 혹시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나지 않을까 염려될 정도로 앙상하고 가벼운 뼈만을 가진 부피감에 놀랐던 기억이 있다. 그 봄밤이 시작이었고 이 봄밤이 마지막일지 몰랐다.
그렇다면 이 두 죽음 사이에 끼인 영경의 몸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 영경의 몸은 저승으로 가지 못하고 이승에서 떠도는 영혼의 잔여라고 말해야 할지 모른다. 텅 빈 영경의 눈이 가르쳐주는 것은 이런 것이 아닐까? 죽은 원혼들이 이승에 남는 이유는 원한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사랑 때문이다. 아직 기억할 게 남았다.
가끔 영경의 눈앞엔 조숙한 소년 같기도 하고 쫓기는 짐승 같기도 한, 놀란 듯하면서도 긴장된 두 개의 눈동자가 떠오르곤 했는데, 그럴 때면 종우가 대체 무슨 일이냐고, 왜 그러느냐고 거듭 묻는데도 영경은 오랜 시간 울기만 했다.
그럴지도 모른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모텔 방에 들어가자마자 수환에게 전화를 하고 언니들에게도 전화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딱 오늘 하룻밤만 마시고 요양원으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그렇게 할 수 있고 마땅히 그렇게 할 것이었다. 성마른 몸에 취한 피가 돌면서 그녀의 눈에 모든 것이 아주 단순하고 명료해 보였다. 손도 떨리지 않고 금세라도 깊이 잠들 수 있을 것 같았다. 영경은 모텔 현관 계단을 올라가며 시의 마지막 부분을 또박또박 반복했다.
“여기 사람들이 아저씨랑 아줌마 보고 뭐라는지 알아요? 이산가족 같대요. 맨날 아침마다 두 사람 만날 때면 이산가족 만나는 것 같대요. 난 아줌마 별로 안 좋아하는데 어쩔 때 아줌마가 아저씨 빤히 쳐다볼 때는 괜히 눈물 나요.
수환은 허깨비같이 걸어가는 영경의 깡마른 뒷모습을 보면서 그녀가 돌아올 때까지 자신이 과연 버틸 수 있을지, 그리고 그녀가 무사히 돌아올 수 있을지를 생각했다. 언제나 영경이 외출할 때마다 드는 생각이었다. 영경은 이틀 만에 돌아오겠다고 했지만 요 근래엔 이틀 만에 돌아온 적이 거의 없었다. 사흘도 아니고, 나흘도 아니고, 지난번엔 일주일 만에 거의 송장 꼴이 되어 돌아왔었다. 수환은 어쩌면 이게 정말 마지막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지만 합병증인 쇼그렌증후군으로 림프선이 말라붙어 눈물은 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