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밤, 몸과 마음
영화는 영경의 눈에서 흐르는 눈물을 제외하면 조금의 수분기도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건조해서, 스크린 속 풍경과 인물은 봄의 찬 바람에 바스락거리다 사라질 것만 같다. 이혼한 남편이 갑자기 아들을 데리고 캐나다로 떠나버린 엄마의 눈에 비친 세상 또한 그런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영경과 수한은 친구의 결혼식 뒤풀이에서 만난다. 산 자들이 잠에 들고 ‘살길은 없고 죽을 길만 남은’ 그들만 깨어 있는 모습은 그곳이 마치 이승의 반대편인 것처럼 느끼게 한다. 삶 저편에도 운명이 있다면 살아도 산 것 같지 않은 둘의 만남을 운명이라 불러도 좋으리라. 수한은 영경이 식탁에 머리를 떨굴 정도로 술에 취한 그녀를 업고 집으로 데려다준다. 영경을 무사히 집으로 모시는 일을 그들의 입을 빌어 말하자면, ‘수한 스스로가 자신의 분자를 키울 수 있는 몇 안 되는 일’이겠다. 이미 분모가 너무 커져 버려서 분자를 키우는 것이 소용 없다고 생각되지만서도, 영경에게는 기꺼이 그 무용한 노력을 얼마든지 내어주는 것이다.
“내가 생각해봤는데 이 비유는 모든 사람에게 적용시킬 수 있을 것 같아. 분자에 그 사람의 좋은 점을 놓고 분모에 그 사람의 나쁜 점을 놓으면 그 사람의 값이 나오는 식이지. 아무리 장점이 많아도 단점이 더 많으면 그 값은 1보다 작고 그 역이면 1보다 크고.”
『봄밤』, 권여선
그들의 관계를 구원이라 부르기는 영 마땅치 않다. 벼랑 끝에 선 사람 둘이 서로 손을 잡았다고 해서 반드시 누가 누군갈 구하고 있으리란 법은 없으니까. 영경과 수한은 그저 서로의 앙상한 몸을 안아주고, 온기를 나눔으로써 존재의 마지막 이유를 고이 간직하며 벼랑 앞에서 서두르지 않을 뿐이다.
애타도록 마음에 서둘지 말라
강물 위에 떨어진 불빛처럼
혁혁한 업적을 바라지 말라
개가 울고 종이 들리고 달이 떠도
너는 조금도 당황하지 말라
술에서 깨어난 무거운 몸이여
오오 봄이여
『봄밤』, 김수영
둘은 각자 다른 이유로 세상에 제대로 서 있지 못하는 존재다. 비틀거리는 두 다리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큰 슬픔의 분모를 가졌기에, 서로 덧셈을 해 보아도 세상은 견딜만한 게 못 된다. 무너지고 망가진 존재 그대로를 받아들였던 둘의 사랑은, 봄의 밤보다는 밤의 봄에 더 가깝게 느껴진다.
p.s. GV에서의 대담이 손에 꼽을 정도로 좋았다. 영경과 수한의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봄밤을 몸과 마음을 다해 연기한 한예리 배우와 김설진 배우, 그리고 많은 말을 삼키고 또 삼켜 한 편의 시와 같은 영화 봄밤을 빚어낸 강미자 감독에게 깊은 존경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