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스타일 풋볼
프리스타일 풋볼은 팔꿈치부터 손까지를 제외한 신체의 어느 부분이든 사용하여 축구공을 저글링하는 예술이다. 이는 축구 기술, 댄스, 아크로바틱과 음악을 결합하여 관중을 즐겁게 하고 상대방과 경쟁한다. 이 스포츠의 공식 관리 기관은 세계 프리스타일 축구 협회(WFFA)로 알려져 있다.
역사
프리스타일 축구의 예술은 친론, 젠지, 세팍 타크로와 같은 동남아시아의 게임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으며, 이는 2,000년 동안 행해져 왔다. ‘넥 스톨’과 ‘어라운드 더 월드’와 같은 기본적인 프리스타일 기술은 서양에서는 처음에 엔리코 라스텔리와 프랜시스 브룬을 포함한 서커스 공연자들에 의해 대중적으로 선보여졌다.12
1970년대와 1980년대에, 아르헨티나 축구선수 디에고 마라도나는 SSC 나폴리에서 활약하는 동안 그의 유명한 프리스타일 ‘라이프 이즈 라이프’ 워밍업을 국제적인 주목을 받게 했다. 그러나 당시에는 프리스타일 능력이 축구 경기 플레이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고 널리 비판받았다.[인용 필요]
21세기 초반, 몇 가지 중요한 사건들이 프리스타일 축구를 더 널리 인정받게 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브라질 축구선수 호나우지뉴는 “조가 보니토”(영어: 아름답게 플레이하라)와 같은 나이키 광고 캠페인에 출연하여, 혼자서 공을 가지고 연습하며 새로운 동작과 기술을 개발하는 능력을 대중화했다.3
마라도나에게 영감을 받은 한국 축구선수 우희영(미스터 우)은 축구 엔터테이너가 되고자 했다. 그는 기네스 세계 기록을 세우고 1988년 하계 올림픽 개막식과 1990년, 1994년 FIFA 월드컵에서 공연했다.4 네덜란드의 수피안 투자니5는 새로운 로워 트릭 스타일을 선보였으며, 이는 바이럴 비디오를 통해 대중화되었다.5
축구선수 샌디 레비타스(일명 밤비볼)는 자신의 프리스타일 기술 비디오를 공유한 최초의 여성 중 한 명이었으며,67 이는 더 많은 여성들이 이 스포츠를 시작하도록 영감을 주었다.89 이후 로워스, 어퍼스, 시트다운스, 그라운드, 블로킹과 같은 다양한 스타일이 개발되었다.
2015년, 호나우지뉴는 세계 프리스타일 축구 협회(WFFA)에 의해 이 스포츠의 대사로 인정받았다.2 전 세계적으로 대회가 조직되었으며, 매월 8천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비디오를 공유해왔다.10
최근 몇 년간, 세계 최고의 축구선수 중 일부는 자신들의 재능을 발전시키는 데 프리스타일과 스트릿 축구 문화가 도움을 주었다고 인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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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History of Freestyle Football” (PDF). Archived from the original (PDF) on 2011-06-27. Retrieved 2011-03-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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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orld Freestyle Football Association news”. 25 March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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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en.wikipedia.org/wiki/Freestyle_football#cite_note-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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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en.wikipedia.org/wiki/Freestyle_football#cite_note-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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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en.wikipedia.org/wiki/Freestyle_football#cite_note-Touzani-7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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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en.wikipedia.org/wiki/Freestyle_football#cite_note-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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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en.wikipedia.org/wiki/Freestyle_football#cite_note-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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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en.wikipedia.org/wiki/Freestyle_football#cite_note-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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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en.wikipedia.org/wiki/Freestyle_football#cite_note-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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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en.wikipedia.org/wiki/Freestyle_football#cite_note-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