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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 2026-06-14 · 3 min read

tags: [mus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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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나 헤를롭(Marina Herlop)의 『Pripyat』은 전혀 다른 세계를 상상하게 한다. 그 세계는 경험하지 못한 과거 같기도 하고, 어쩌면 아주 먼 미래의 예언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오로지 아름다움만을 위한 발성은 그것이 언어로 읽히길 거부하면서도, 동시에 아주 내밀한 감정을 건드린다.

처음부터 전위적인 음악을 선보였던 것은 아니다. 스물셋 무렵 Badalona 음악원에 들어가 클래식 피아노를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한 그녀는, 『Pripyat』 이전까지 피아노와 목소리만으로 이루어진 음악을 주로 선보였다.1 앨범은 큰 반응을 얻지 못했고, 그녀는 자신이 정말 음악가로 살아갈 수 있을지 자주 의심했지만, 결코 멈추지 않았다. 대신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다룰 줄 몰랐던 전자음악을 배우기로 시도한 것이다. 그녀는 스페인 Aragon에 있는 아버지 집에 머물며 Ableton Live의 3천 개가 넘는 신시사이저 프리셋을 하나씩 시험하며 전자음악이 가진 새로운 가능성을 탐구했다.2 클래식 피아노와 인도 카르나틱 음악을 기반으로 한 리듬 감각, 그리고 전자음이 더해져 세상에 전혀 없는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젖히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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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를롭은 앨범의 4번 트랙 「Miu」를 두고, 자신의 작품(혹은 작품을 만드는 과정)이 horror Vacui와 비슷하다고 이야기한다. 그녀는 음악을 만들 때 가능한 많은 레이어와 섹션을 만든 뒤, 거의 모든 재료를 버리고 그중 아주 조금만 남긴다고 한다.3 미켈란젤로의 말처럼 조각이 대리석 안에 이미 있는 형상을 꺼내는 일이라면, 헤를롭이 혼돈 속에서 완벽과 순수를 찾아내는 과정 또한 조각과의 방식과 맞닿아 있다고 볼 수 있다.4 아니, 어쩌면 자신의 대리석을 그녀 스스로 만든다는 점에서 어쩌면 조각보다도 더 많은 작업을 수반한다. 그 결과물이 추상적이고 쉽게 이해할 수 없는 형태를 띨 뿐이지, 그녀의 작업 방식은 아주 정직하게,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들여야 하는 노동이다.

"사람들은 앨범이 무엇에 관한 것인지 묻죠... 글쎄요,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게 마법이죠! 저는 빨간 모자 이야기를 설명하고 있는 게 아닙니다. 음악은 그 자체로 존재하고, 우리의 삶과 관련되지 않고도 우리를 움직일 수 있어요. 저는 그 점이 좋아요."5

헤를롭은 자신의 음악이 개인적인 감정이나 삶의 한 국면을 묘사하려는 것이 아니며, 음악 바깥의 무언가를 끌어오려 하지도 않는다고 명백히 밝힌다. 그녀가 중요시 여기는 것은 어떤 감정이나 사건의 전달이 아니라, 음악이 스스로 완결된 구조를 갖추는 일이다. 그렇기에 그녀의 음악은 아무것도 아니면서 동시에 모든 게 될 수 있다. 음악이 "어떤 이야기를 설명하려 하지 않아도 그 자체로 사람을 움직일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믿음이야말로 음악가가 가질 수 있는 가장 순수한 욕망이 아닐까.

마리나 헤를롭은 미래와 과거를 동시에 경험하게 한다. 그녀의 음악을 들으면 뼈가 간지럽다. 그것은 중생대(中生代)에 퇴화한 포유류 시절의 감각일 수도, 5000년 후에 진화할 어떤 감각에 대한 예언일지도 모른다.

Footnotes

  1. Fifteen Questions Interview with Marina Herlop

  2. Marina Herlop Embraces Classical Training and Chaos. Her Music Thrives on Both

  3. Marina Herlop marries Carnatic rhythms with cow births in ‘miu’

  4. Michelangelo’s Prisoners or Slaves

  5. Marina Herlop Embraces Classical Training and Chaos. Her Music Thrives on Bot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