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현실주의는 유머의 힘으로 태어났고 유머의 힘으로 해방을 꿈꾼다. - 루이스 부뉴엘
1. 「나는 살인청부업자를 고용했다」 by 아키 카우리스마키
핀란드의 유머는 그 자체로 하나의 예술 형식입니다. 미묘하고 무표정하며, 종종 너무 건조해서 외부인들은 농담이 오갔다는 사실조차 눈치채지 못할 정도입니다. 일부 문화권에서는 과장된 표정이나 결정적인 한 마디에 의존하는 반면, 핀란드인들은 절제된 표현의 기술을 능숙하게 구사합니다.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거나, 거의 알아채기 힘든 미소를 짓거나, 단 한 마디로 대답하는 것만으로도 스탠드업 코미디 전체 공연보다 더 큰 웃음을 자아낼 수 있습니다.1

시리즈 「Veep」에서는 Minna Häkkinen라는 핀란드 총리가 감초 역할로 등장하여, 특유의 핀란드식 유머로 극의 재미를 더한다. 그녀는 자신들의 핀란드식 유머와 함께, 그것을 영화적으로 잘 표현해 낸 자국의 아키 카우리스마키 감독을 자랑한다. 미국에서 온 정치인 모두 그게 누군지도 모르는 표정을 짓지만, 그 대사를 듣고는 아키 카우리스마키 감독의 영화가 보고 싶어졌다. 재작년 「사랑은 낙엽을 타고」를 재미있게 본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나는 살인청부업자를 고용했다」를 보았다. 영화는 주인공 헨리 불랑제의 실업으로 시작한다. 15년 동안 다녔던 회사에서 하루아침에 잘린 그는, 더 이상 살 의미가 없다며 갖가지 방법으로 자살을 시도한다. 옥상에 밧줄을 매달았으나 벽이 무너졌고, 부엌 가스를 들이마시려고 하지만 가스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자, 그는 자신을 대신 죽여줄 살인 청부업자를 고용한다. 그곳의 직원들은 인생이 이렇게 아름다운데 왜 죽으려고 하냐며 그를 말리지만, 그는 단호하다. 평생 술담배도 않던 그는 어차피 죽을 목숨인데 무슨 소용이냐는 듯 집 앞에 있는 펍(Pub)에서 밤새 술을 마시고 담배를 태운다. 그러다 장미를 파는 마가렛을 만나 사랑에 빠지고, 사랑에 빠졌다는 이유로 죽기 싫어진 그는 청부살인업자를 피해 다닌다…
이야기 전개 자체가 유머로 가득해 대사도 적고, 이렇다 할 극적인 사건도 없는데도 빠져들어 보았다. 사뭇 결연하지만 엉성하고, 진지하면서도 머릿속이 비워져 있는 듯한 인물들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보는 재미가 있다. 메시지와 이미지가 과잉하여 흘러 넘치는 시대에, 이런 슴슴한 영화야말로 오히려 신선하게 다가오는 것일 수도 있겠다.
2. Dos Juanas
최근 며칠동안 애플뮤직이 속을 썩였다. 어느 날엔 결제가 안 되어 하루종일 사용하지 못했고, 즐겨찾기가 안 눌린다거나 앨범이 보이지 않는 자잘한 오류가 많아 몇 번을 껐다 켜야 했다. 오랜만에 스포티파이를 켜니 3개월 무료 이용권을 준다고 해서 이번 주는 스포티파이로 음악을 듣고 있다. 예전엔 음악을 옮기는 일이 귀찮아 불편하더라도 사용하던 플랫폼을 벗어나기가 쉽지 않았는데, 요즘은 Tune My Music 등의 서비스로 마음만 먹으면 어디로든 재생목록을 옮길 수 있다. 스포티파이는 그동안 달라진 내 음악 취향을 보더니, 아르헨티나의 두 아티스트를 추천해 주었다. 공교롭게도 둘 모두 Juana라는 같은 이름을 지녔다.
(1) 후아나 아귀레 (Juana Aguirre)
포크와 일렉트로니카를 절묘하게 조합하여 통속적이면서도 전혀 새롭다. 다양한 소리가 한곳에 녹아들어 잔잔하지만 다채롭다. 소음과 음악의 모호한 경계를 가감없이 넘나든다. 전에 몇 곡 들었던 아티스트인데, 이번에 그녀의 앨범을 처음부터 끝까지 들으며 더욱 빠져들었다. 책처럼 음악도 제때라는 게 있나 보다. 라이브를 보면, 곡에 등장하는 풍성하고 다채로운 사운드를 무대 위에서 직접 만들어내며 행위 예술에 가까운 퍼포먼스를 선보인다.
『Anónimo』의 앨범 커버는 Beck, Frank Ocean 등과 협업해온 그래픽 디자이너 Bráulio Amado의 작품이다. 인체를 기하학적 파편으로 분해하고 재조합한 구성은 입체주의 콜라주를 떠올리게 하면서도, 투박한 붓자국과 원시적 형태 처리에서는 뒤뷔페의 아르 브뤼가 겹쳐 보인다.
가장 귀에 감기는 곡은 “불”이라는 뜻의 〈Fuego〉. 불의 신에게 기도를 올리는 듯한 제의적(祭儀的) 분위기를 전자음으로 잘 빚어내었다.

(2) 후아나 몰리나 (Juana Molina)
아르헨티나의 아방가르드한 사운드를 널리 알렸다고 평가받는 아티스트. 포크트로니카, 앰비언트, 실험음악, 네오포크 등 다양한 장르를 연상시키면서도, 어느 하나에 쉽게 종속되지 않는 분류 불가능한 음악을 구사한다. 1990년대 초 코미디 배우로 먼저 데뷔한 독특한 이력을 가졌다. 아르헨티나 내에서는 꽤 인기가 있었는지, TV를 떠나 음악을 하는 것에 대한 반감으로 데뷔 초창기 부정적 평가를 받았다고 한다.
3. 「산 정상의 페피, 루시, 봄 그리고 다른 사람들」 by 페드로 알모도바르

MUBI에서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초기작 「산 정상의 페피, 루시, 봄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보았다. 젊음을 표현하는 방식에 있어 소마이 신지의 「태풍 클럽」이 떠오르기도 했다(불쾌함이야말로 젊음을 표현하는 데 불가결한 요소가 아닐까). 괴상하면서도 날것의 매력이 있다. 「룸 넥스트 도어」도 물론 재미있게 보았지만, 빠와 까를 동시에 대량생산해냈던 그의 발칙한 초기작이 나는 더 좋으면서 싫다. 『스페인 영화 (작가주의 전통과 국가 정체성의 재현)』을 도서관에서 빌려 읽고 있는데, 포스트-프랑코 시대에 도발적인 작품을 선보였던 그에 대한 세간의 평가가 궁금한 이유가 크다. 다다음 주까지는 그의 영화 몇 편을 더 보고, 책도 다 읽은 뒤에 더 자세한 평을 남길 수 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