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아니면 영원히

팬데믹 암흑기 동안 칠레 산티아고에 사는 청년 마티아스 아빌라(Matías Ávila)는 PCR 검사만 80번 넘게 하는 등, 생사를 오가는 혼란스러운 시간을 겪으며 “지금 좋아하는 걸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결심에 이르게 된다. 생전 파티에도 한 번 가본 적 없던 내성적인 그는 음악교육학과에 입학하여 첫 개인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이후 6인조 밴드를 결성한다. 그렇게 탄생한 밴드가 바로 Candelabro(칸델라브로)다. 스페인어로 촛대를 뜻하는 ‘Candelabro’라는 이름은 함께 모여 어둠을 밝히겠다는 그들의 다짐을 담고 있다. 2023년 데뷔 앨범 Ahora o Nunca(지금 아니면 영원히)를 발매한 이들은 이제 칠레를 넘어 라틴 아메리카 전역에서 주목받는 존재로 떠오르고 있다.

“우리의 음악은 촛대처럼 빛을 밝히는 존재예요. 각자 다른 개성이 모여 하나의 빛을 만들어내죠.”1

Candelabro는 자신들의 음악을 ‘너드 록(Nerd Rock)’이라 지칭한다. 이는 전통적인 록의 반항적인 이미지와는 거리가 먼, 수줍음 많고 내향적인 그들의 모습을 애정스럽게 담아낸 표현이다. 이들의 음악은 슈게이징(Shoegaze)의 몽환적인 기타 사운드와 라틴 아메리카 특유의 감성적인 멜로디가 어우러져 독특한 정체성을 만들어낸다. 색소폰, 신디사이저, 클라리넷 등 다양한 악기를 활용해 재즈의 즉흥성부터 펑크 록의 에너지를 넘나드는 실험적인 면모 또한 눈에 띈다.

첫 앨범, Ahora o Nunca는 팬데믹 이후 젊은 세대들이 겪는 정체성의 혼란과 탐색을 주제로 삼는다. Refugio(피난처) 연작에서는 사회적 고립 속에서 발견한 내면의 안식처를, Señales(신호)는 복잡하고 애매한 인간관계 속에서 마주하는 혼란과 상실감을 섬세하게 그려낸다23. 특히 Bonva에서는 칠레 대중에게 익숙한 문화적 아이콘 에두아르도 본발레트(Eduardo Bonvallet)를 통해 길을 잃은 청춘에게 방향을 제시해줄 아버지의 부재를 은유적으로 다루며, 집단적 향수와 세대적 공백을 동시에 포착하는 노련함도 돋보인다45.

이들의 노래 가사에는 SNS에 대한 피로감, 미래에 대한 불안, 세대 간의 단절 처럼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가 겪는 고민이 솔직하게 투영되어 있다. _Madre_에서는 전통적인 가족 관계에 얽힌 복잡한 감정을, _Pucha que ha costado_에서는 성인으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마주하는 청춘의 고통을 진솔하게 풀어냈다35. 이러한 메시지는 Estoy Bien, Asia Menor 같은 동시대 칠레 밴드들과 공명하며 하나의 거대한 음악적 흐름을 형성하고 있다67.

2025년, 그들은 마침내 꿈에 그리던 롤라팔루자 칠레(Lollapalooza Chile) 무대에 올라 국제적인 데뷔를 성공적으로 마쳤으며, 현재 두 번째 정규 앨범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Candelabro라는 밴드는 이제 단순한 음악 그룹을 넘어 동시대를 살아가는 칠레 청년들의 내면을 대변하는 하나의 목소리가 되어가고 있다. 한 명의 팬으로서, “지금 아니면 영원히”를 외치는 이들의 메시지가 더 널리, 더 깊이 울려 퍼지길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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