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우리는 같은 꿈을 꾼다」, 일디코 엔예디

공통점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도축장에서 일하는 두 남녀가 같은 꿈을 꾸는 이야기. 꿈에서 둘은 눈 덮인 숲을 돌아다니는 두 마리의 사슴이고, 같은 꿈을 꾼다는 것을 알게 된 후에는 꿈속에서 서로를 알아보기까지 한다. 둘은 현실에서도 서로에게 호감을 갖지만, 마리아(여자 주인공)는 남에게 다가가는 법을 모르고, 남자는 여자가 자신을 거절하는 것으로 오해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마리아가 ‘자기 일에 확실하고 무뚝뚝한’ 캐릭터에서 ‘세상 물정 하나도 모르는 어른아이’처럼 변해가는 것이 썩 달갑지만은 않았지만, 세상살이와 인간관계가 쉽지 않은 누구나 마리아일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영화는 소가 공장에서 도축되는 장면을 꽤 적나라하게 보여주어서, 처음에는 동물에 대한 다큐멘터리인가 싶기도 했다. 수도꼭지에서 물 떨어지는 소리, 사람들 떠드는 소리, 자동차 경적 소리 같은 주변의 소음이 유난히 크게 들리는데, 그 덕분에 인물들의 단절과 고독이 더욱 도드라져 보였다. 영화는 마리아가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쉽게 제시하지 않았고,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뒤에도 완전히 이어지지 못하는 두 사람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관계의 성취보다, 관계가 성립되는 순간 사라져버리는 상실 비슷한 감정에 더 관심이 있어 보였다. 마리아는 더이상 마리아 같지 않았고, 더 이상 같은 꿈을 꾸지 않는다는 게 오히려 더 씁쓸했다.
p.s. 내가 꾸었던 동물 꿈 중 가장 무섭고 잔인했던 꿈은, 덩치 큰 검은 소 무리가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꿈이었다. 군대에서 보냈던 어느 여름날에 꾼 꿈으로 기억한다.
(2) 『사랑의 생애』, 이승우
사랑에 대한 대단한 골몰이 담겨 있는 소설. 좋은 문장이 많았지만 중간에 가서는 피곤함을 느끼고 대충 읽어 내려갔다. 그럼에도 곳곳에 마음을 찌르는 문장이 있어 밑줄을 열심히 그었다.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의 숙주이다. 사랑은 누군가에게 홀려서 사랑하기로 작정한 사람의 내부에서 생을 시작한다.
숙주는 기생체가 욕망하고 주문하는 것을 욕망하고 주문한다. 자기 욕망이고 자기 주문인 것처럼 욕망하고 주문한다.
그냥 내버려둘 수 없는 것이 누군가의 약함이다. 약한 것들은 무엇인가를, 어떻게든 할 것을, 가만히 있지 말 것을 요청한다. 약함으로부터 가만히 있지 말고 무엇인가를, 어떻게든 하라는 강요를 받을 때, 그 강요를 받은 사람이 아무것도 하지 않기는 쉽지 않다. 약함은 유인한다. 강한 것은 뿌리칠 수 있지만 약한 것은 그럴 수 없다. 강한 것에는 저항하고 대들 수 있지만 약한 것에는 그럴 수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무기를 가지고 위협하는 자와 싸우는 것은 필요하고 가능한 일이지만, 무장하지 않은 이를 공격하는 것은 필요하지 않고 가능한 일도 아니다. 강한 자는 무기를 가지고 위협해야 할 정도로 약하고, 약한 자는 무기를 가질 필요가 없을 정도로 강하다. 약함 자체가 무기이니까 따로 무기를 가질 필요가 없다.
(3) 「너바나 더 밴드」, 맷 존슨
절체절명의 순간에 얼굴로 신문지가 날아와 그 1면에 적힌 기사를 읽는 장면이 들어간 영화를 도무지 좋았다고 말할 수 없다.
(4) 「여름의 랑데뷰」, 발렌틴 카디크

블란딘 마덱의 연기에 푹 빠져들었다. 타인을 대할 땐 세상 선량한 미소를 짓고, 결코 그들을 불쾌하게 하지 않으려 노력하면서도 정작 자신의 내면은 혼돈 그 자체인 사람. 누군가에게 쉽게 기대지 않으면서도 스스로 갈 길을 기어코 찾아내는 사람. 대단한 사건 없는 도돌이표 같은 인생이지만, 자신만의 작고 사소한 변증법으로 조금씩 단단해지는 사람. 자주 외로워서 누군가 툭 던진 질문에도 TMI를 시시콜콜 늘어놓는 사람. 아마 영화 속 블란딘은 그런 사람이 아닐까. 그러나 낯선 곳에 혼자 여행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든 블란딘에게 자신을 비추어볼 수 있을 것이다.
정치적인 문제에 대해서도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는 점이 좋았고, 인물 군상에 대한 감독 자신의 이해 역시 대단하다고 느껴졌다. 허탕으로 가득했던 파리에서의 일주일이었지만, 아마도 그녀는 그 여행에 나름 만족했을 것이다. 헤어진 연인을 뒤로하고 혼자 용기 내어 떠난 여행이었으며, 여러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고, 자신이 좋아했던 수영선수 베릴을 멀리서나마 볼 수 있었고, 피아노를 연주하여 주변 행인들에게 박수갈채도 받았으니까. 나의 여름도 이러했으면 좋겠다.
(5) 『쓰게 될 것』, 『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 최진영
감정이 무거워지는 바람에 여러 번 중도포기했던 최진영 소설가의 책에 다시 도전했다. 정말이지 외면하려는 현실이 없어 보이는 사람처럼 느껴졌고, 그게 부러우면서도 남달라 보였다.
(6) 「르누아르」, 하야카와 치에

후키가 보였던 건 대담함이었을까, 아니면 무기력함이었나? 인상주의는 빛과 공기, 순간의 시각적 인상이 눈에 시시각각 어떻게 감각되는지를 포착하려 했고, 사실주의는 현실과 사회를 왜곡없이 재현하려 했다. 결국 둘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려 했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인상주의의 대가 르누아르를 제목으로 하는 이 영화는 표면적으로는 인상주의의 방식을 채택하면서도, 내용적으로는 대단히 사실주의적이다. 마지막 즈음 엄마와 후키가 초능력으로 서로의 패를 맞추는 장면이 두 번 나오는데, 두 번째 장면에서 카메라가 잠시 더 길게 붙잡아두었던 미묘한 찰나가 이상할 만큼 깊은 여운을 남긴다.
2025년의 이베로아메리카 Top 50 앨범을 정리한 글을 발견하여 들을 음악이 넘쳐나는 요즘이다. 오늘은 방청소를 하며 Ela Minus의 DÍA 앨범을 크게 틀어놓고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