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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 2026-06-03 · 4 min read

tags: [music]

실험적 첼리스트이자 작곡가 마베 프라티(Mabe Fratti)에게 첼로는 또 하나의 몸이다. 그녀는 첼로를 두드리고 뜯고 긁고 어루만지며, 네 개의 현을 가진 악기가 낼 수 있는 거의 모든 소리를 발현(發絃)한다. 프라티의 첼로는 때로 베이스처럼 낮게 진동하고, 전자 기타처럼 거칠게 갈라지며, 때로는 목소리보다 더 직접적으로 말을 건넨다. 하물며 악기 바깥의 소리에도 관심이 많은 그녀는, 자연과 도시의 다양한 소리를 자신의 음악 안으로 포용함으로써 세계와 접촉하면서 만나는 모든 소리를 담아낸다.

그녀는 음악을 위한 인프라가 충분하지 않았던 과테말라의 한 도시에서 자랐다. 유년기였던 2000년대 초 과테말라는 폭력 범죄와 살인이 빈번했고, 그녀는 여느 평범한 아이처럼 자유롭게 뛰어놀 수 없었다. 바깥 세계는 위협과 미스터리로 가득한 곳이었고, 이후 그녀의 음악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불안, 경계, 벽 너머의 존재, 미지의 세계 같은 감각의 뿌리가 된다.

https://genius.com/albums/Mabe-fratti/Pies-sobre-la-tierra

프라티는 대학교에서 저널리즘과 미술사, 인문학, 음향기술 등을 공부했지만 어떤 것도 제대로 끝마치지 않았다. 늘 자신의 창의성과 연결된 무언가를 하고 싶어했고, 그 중심에는 어린 시절부터 배웠던 첼로가 있었다. 2010-11년 무렵부터 여러 밴드에 합류해 활동하기 시작한 그녀는 2015년 멕시코시티에서 중앙아메리카, 멕시코, 독일, 핀란드의 음악가들이 모인 레지던시에 참여하며 활발한 음악 활동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2019년, 첫 정규 앨범 Pies sobre la tierra(대지 위의 발)를 발표하며 자신의 실험적인 세계를 본격적으로 구축하기 시작했다.

라틴아메리카 문화권에서 “pies sobre la tierra”는 “현실을 직시한다”는 의미로 쓰인다. 이는 우리의 몸을 정신이 잠시 거처하는 껍데기가 아닌, 세계를 지각하고 이해하고 살아내는 근본적인 조건으로 보았던 Maurice Merleau-Ponty의 사유와도 맞닿아 있다. 프라티는 이 앨범에 대해, 우리가 머릿속에서 계획한 것을 어떻게 현실화하는지, 그리고 몸과 마음 사이에 어떤 경계가 놓여 있는지를 생각하며 작업했다고 말한다. 이 앨범에는, 실험적이면서도 결코 현실로부터 발을 떼지 않겠다는 프라티의 당찬 포부가 엿보인다.

https://www.nytimes.com/2024/06/24/arts/music/mabe-fratti-sentir-que-no-sabes.html

앨범은 첼로가 만들어내는 아날로그한 물성, 귀를 자극하는 신시사이저 사운드, 그리고 존재의 연약함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한 인간의 목소리가 서로 불화하고 화합하기를 반복한다. 이러한 특징은 1번 트랙 “El Sol Sigue Ahí (태양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부터 뚜렷하게 드러난다. 불규칙함 속에서 어렴풋이 쌓이는 멜로디는, 또 다른 불규칙함에 의해 무너지기를 반복하면서 희망과 불안, 긴장과 이완 같은 양가적인 감정을 동시에 불러일으킨다.

이탈리아의 미래주의 화가이자 아방가르드적 음악가 루이지 루솔로(1885~1947)는 “현대에 이르러서는 소음이야말로 우리에게 가장 친근하고 친숙한 소리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러한 소리를 적극적으로 음악 안에 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2번 트랙 “Entrando Al Cuarto De La Duda (의심의 방으로 들어가기)”는 기계가 작동하는 소리, 주변의 치찰음, 노이즈, 사람의 웅성거림 같은 온갖 소음이 어떠한 필터도 거치지 않고 다가와, 존재는 소리의 근원을 알 수 없는 불안함에 둘러싸인다.

https://mabefratti1.bandcamp.com/album/pies-sobre-la-tierra

이어지는 “Creo Que Puedo Hacer Algo (나는 무언가 할 수 있을 것 같다)”에서는 제목 그대로 작은 의지가 생겨난다. 다만 그것은 근거 없는 낙관이 아니라, 수많은 자기의심을 통과한 뒤에 남은 최소한의 존재 선언에 가깝다. “Ignora (무시하라)”와 “Todo Lo Que Querías Saber (네가 알고 싶어 했던 모든 것)”를 지나며 앨범은 무너짐과 쌓음을 반복한다. 존재는 자신이 아니었던 것들, 자신을 대신 말해온 목소리들, 몸과 마음 사이에 그어진 가상의 경계로부터 조금씩 탈피한다. 이 모든 존재론적 변증법은 세계 바깥으로 도피하기 위함이 아니라, 가장 솔직하고 단단한 마음으로 현실에 발을 딛기 위함이다(그곳이 폐허일지라도).

“그리고 네가 그 폐허를 찾는다면 나는 그곳에 있을 거야 / 고동치는 하나의 힘으로써, 나는 여기 있어”

6번 트랙 “Pronto Su Cuerpo Estaría Silencioso: Pronto Sería Libre (곧 그의 몸은 조용해질 것이다: 곧 그는 자유로워질 것이다)”에 이르면 앨범은 몸의 침묵과 자유를 동시에 떠올린다. 여기서 자유는 몸을 벗어나는 일이 아니라, 몸이 더 이상 기존의 방식으로만 규정되지 않는 상태에 가깝다. 첼로는 고전적 현악기의 자리를 벗어나고, 목소리 역시 또렷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기관에서 흔들리는 음향의 일부가 된다. 몸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변형된다.

그 변형의 감각은 “Dirección (방향)”에서 더 넓어진다. 소리들은 하나의 방향으로 수렴하기보다 한없이 발산하며 모든 가능성을 탐구한다. 마지막 8번 트랙 “El Trabajo Será Nuestro Final (노동이 우리의 마지막이 될 것이다)”에 이르러서 모든 소요가 끝이 나고, 새로운 몸과 새로운 마음으로 세상 앞에 선 자아가 고요히 현재를 응시한다.

프라티의 음악은 몸과 마음 그 어느 한쪽에 치우쳐 있지 않다. 그녀는 첼로라는 악기로 세계를 어루만지고, 의심하고, 그 안에서 존재의 이유와 환원 불가능한 희망을 찾아 나선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