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서른다섯이라고 해봅시다. 이중 1/3은 자는 데 쓰입니다. 386주는 일하는 데, 196주는 집안일 하는 데 쓰이고요. 98주는 오줌 싸고, 똥 싸고, 거울 보며 "나 좀 섹시한데?" 하는 데 쓰입니다. 112주는 밥 먹는 데, 40주는 아픈 데 — 광견병이든 감기든 폭발적 설사든 다음번에 우리를 덮칠 팬데믹이든 — 쓰이고요." (......) 오늘 서른다섯이라면, 진짜로 살 시간은 4.5년밖에 안 남은 겁니다. 그게 끝이에요. 당신이 정말로 아끼는 것들에 쓸 수 있는 시간이 그만큼이라는 뜻입니다.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시간만이 중요하다면) 인생이라는 선물은 포장지가 너무 두꺼운 게 아닌가?
20세기 초반에 뒤샹과 작곡가 에리크 사티 둘 다 기억 없이 살고 싶다는 바람을 토로했다. 그들에게 기억 없는 삶이란 일상의 경이로움에 현존하는 방법이었다.1
기억을 지우면 처음이 많아질 거고, 우리는 다시 세상에 대한 주관도 습관도 없이, 책상다리를 하기도 하고 뛰어다니고, 사진을 찍을 때 억지 표정을 짓지 않았던2 어린 시절의 마음을 가질 수 있을까. 그런데 기억상실증에 걸린 영화 주인공 대부분은 불운하다. '당신이 누군지' 기억하려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몸에 문신을 해 가며 과거를 기억하려는 이도 있다. 물웅덩이를 첨벙거리며 즐거워하고, 아이처럼 다시 순수에 젖어드는 경우는 좀처럼 보기 힘들다. 아니면 기억을 너무 조금 잃어서일까. 어른의 상상력의 한계일까?
호기심 많고 밝지만 몹시 지루해하는 사촌과 휴일 저녁 식사를 함께 한 일이 떠오른다. 그도 변호사다. 그는 직업상 날마다 끊임없이 따분한 법률 문서나 써야 한다며 신세 한탄을 하고 있었다. 나는 사촌에게 자극을 주려고 말하길, “네가 온종일 하는 일을 예술이라고 생각해 보면 어떨까? 그런 문서를 재구성하면 내가 지금껏 본 많은 개념 예술 기록물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을 텐데 말이야. 사실 크리스토 같은 예술가의 실천에는 이를테면 캘리포니아 황무지에 수 마일에 달하는 울타리를 치기 위해 그가 제출해야 했던 법률 문서가 모두 포함되거든. 많은 개념적 예술과 글쓰기는 법률 용어의 건조한 권위와 기록화에 대한 매혹으로 가득 차 있지. 그리고 ‘너도 그 전통의 일부가 될 수 있을 거야.’”라고 제안했다. 버네사 플레이스 작업3에 관해 얘기해 줄 수도 있었다. 사촌은 흥미를 느꼈지만, 이의를 제기했고 그 후로도 여러 해 동안 계속 지루해했다.1
어쩌면 모든 게 다 생각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생각은 개구멍을 파고 머리를 처박는 결말로 끝이 난다.

「플랜 75」라는 일본 영화를 보았다. 영화는 고령화가 심해져 급기야 75세가 넘을 경우 나라에서 조력자살을 장려하는 정책이 도입된다는 어마무시한 세계관을 다룬다. 죽음을 장려하는 사회라니. 공포를 떨쳐내기 위해 ChatGPT에게 검색한다. "75세 이후에 대단한 무언갈 성취한 인물에 대해 알려줘."
🤖:
- 괴테 — 82세에 『파우스트』 2부를 완성하고 이듬해 세상을 떠났습니다.
- 넬슨 만델라 — 75세에 남아공 최초의 흑인 대통령으로 취임해 인종차별 체제 이후의 국가를 설계했습니다.
- 존 글렌 — 77세에 우주왕복선 디스커버리호에 탑승해 최고령 우주비행 기록을 세웠습니다.
- 미우라 유이치로 — 80세에 에베레스트 정상에 올랐습니다. 심장 수술을 여러 차례 받은 뒤의 도전이었습니다.
- 그랜마 모지스(애나 메리 로버트슨) — 관절염으로 자수를 접고 76세에 본격적으로 그림을 시작해 101세까지 1,500여 점을 남겼고, 미국 민속화의 대표 작가가 됐습니다.
하야카와 치에 감독의 영화가 달고나 놀이와 비슷하다고 속으로 생각하고 혼자 흡족스러워 한다. 자칫 잘못 건드리면 깨질 것 같은 아주 연약한 세계를 정성스레 만든 뒤, 완성한 순간 녹아 없어지도록 혀로 핥거나 두들겨 깨부수기.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서 — 1/3만큼만 남은 인생이라고 생각하는 건 (그것이 꽤 정확한 계산이라 하더라도) 절대 사절이지만, 쓸 수 있는 시간과 에너지가 한정적이라는 건 매일 아침 일어나 잠에 들기 직전까지 실감한다. 원하는 하루·한 달·일 년을 보내기 위해 무언가는 제대로 해야 하고, 무언가는 적당히, 또 무언가는 덜 해야 한다. 40년이 지난 뒤 이런 설문을 받는다고 생각해 보자.
- 당신이 (그나마) 제대로 한 것은 무엇입니까?
- 돌이켜 보았을 때 덜 해야 했다고 느끼는 건 무엇이죠?
생존이 걸린 문제일 수도 있다.
Bug Teeth의 「Tapeworm」4은 세상을 떠난 어머니에게 이렇게 질문한다.
"With time again would you give it up / A sacrifice / Would you give me up?"
이 이야기에 대해서는 시작도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