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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 2026-06-22 · 3 min read

tags: [note, journal]

좋아하는 것을 표현하기 1

"예술에 대해서 할 수 있는 최악의 일은 예술의 존재를 변호하는 것이다"1라는 반 룬의 문장은 나를 오랫동안 괴롭혔다. 예술을 변호하고 싶은 거창한 포부가 있어서는 아니고, "예술"의 자리에 얼마든지 다른 단어가 들어갈 수 있다는 무한한 가능성 때문이었다. 나는 이 문장을 떠올릴 때마다 "예술"보다 "변호"가 더 무겁게 다가온다. 좋아하는 무언가에 대해 위와 같은 태도를 가질 수 있겠지만, 아무래도 입과 손이 근질거리는 바람에, 내가 좋아하는 무언가에 대해 주저리 늘어놓으며 애써 변호하려 할 때가 있다. 그런 내게 저 문장은 꽤 가혹했고, 어쩌면 부조리하다고 생각했다. 원문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2

"The worst service one can render the arts is to 'apologize' for their existence."

반 룬은 "defend"가 아닌 "apologize"를 사용한다. 그가 문제 삼은 건 예술을 옹호하는 행위 자체라기보다, 예술이 "인격 수양에 도움이 된다"거나 "더 나은 사람을 만든다"라는 실용적인 이유를 들어 예술의 존재 의의를 찾으려는 태도에 대한 비판이었다. 반 룬은 예술이 자신의 존재 이유를 외부에서 빌려올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좋아하는 무언가에 대해 단순히 구구절절 늘어놓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의도의 감옥에서 벗어나자마자 나는 또 다른 문장을 마주한다.

“사실 본질적으로 엔트로피의 부정이며, 확률의 부정 지수인 메시지에 담긴 정보를 해독하는 것은 가능하다. 다시 말해 메시지의 개연성이 높을수록 그 안에 포함된 정보량은 적다. 예를 들어 상투적인 표현은 위대한 시보다 덜 정확하다.”3

더 아프게 뼈를 때리는 말이다. 어떠한 당위도 담겨 있지 않지만, 분명 스스로의 능력을 의심하게 만드는 말이다. 그러나 만약 내가 표현하려는 무언가가 애초에 표현 불가능한 것이라면? 위너가 말한 정확성은 무엇을 의미하며, 상투적인 표현과 위대한 시 중 무엇이 대상에 더 가까워졌음을 입증할 방법은 무엇인가.

좋아하는 것을 표현하기 2

물론 나 또한 어떤 표현이 상투적인지, 어떤 표현이 위대한지(적어도 대상에 더 가까운지) 본능적으로 감지하고 비교한다. 설령 표현 불가능한 것이라 하더라도 더 우아한 실패가 존재한다고 믿는다. 그러므로 이 문장은 쓰더라도 곱씹으며 더 나아지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왜 나는 더 나아지기를 바라야 할까? 애초에 왜 좋아하는 무언가에 대해 표현하고 싶어 할까.

예전에는 무의식적으로 대단하거나 추악한 의도를 숨기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를 오랫동안 관찰한 바에 의하면, 나는 그렇게 심오한 무의식을 갖고 있지 않고 어떤 의도를 깊숙이 숨겨둘 만큼 부지런하거나 복잡한 사람도 아니다. 그럴 깜냥이 되지 못한다. 게다가 반 룬의 말에 빗대자면 그 마음을 변호하려는 것이야말로 최악의 일일 테지. 결국 나를 오랫동안 곤혹에 빠뜨렸던 그의 말이 나를 수많은 물음으로부터 자유롭게 하는 셈이다.

Footnotes

  1. 『예술의 역사』, 헨드릭 빌렘 반 룬

  2. 저자 헨드릭 빌럼 반 룬은 네덜란드 출신이지만 젊은 시절 미국으로 이주해 활동했고, 주요 저작들을 모두 영어로 집필했다.

  3. 책 『비개념원리 (전대한 대중음악비평집)』에서 발췌. 백남준은 글 「마리 바우어마이스터 혹은 "나를 우주를 받아들인다"」(1972)와 「노버트 위너와 마셜 매클루언」(1974)에서 해당 내용을 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