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주의와 낭만주의의 반복
2006 서양의 그리스부터 19세기까지의 미술사에서 고전주의적 경향과 낭만주의적 경향이 반복되어 나타남을 볼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다음 사항에 대하여 설명하시오.(작가와 작품명, 대체적인 년대 등을 밝힐 것) (50점)
- 그리스 고전주의와 헬레니즘 시대의 조각작품 한 점씩을 예로 들어 조각 양식을 비교하시오. (10점)
- 르네상스와 매너리즘 시대의 회화작품 한 점씩을 예로 들어 양식을 비교하시오. (10점)
- 신고전주의와 낭만주의 작품을 한 점씩 예로 들어 비교하시오. (10점)
- 위 1), 2), 3)항에서 발견되는 공통성과 차이점을 논하고 미술사에서 반복되는 이러한 변천현상에 대하여 수험생의 견해를 피력하시오. (20점)
고전주의와 헬레니즘
그리스 고전주의 시기는 그리스 미술과 건축의 전성기로서 형식과 균형, 비례, 질서, 조화(canon)에서 이상적인 인간상의 모범을 보여주는 시기이다. 즉, 인간 중심 사상을 바탕으로 정확하고 규격화된 이상미와 조화미, 균형미를 갖추고자 한 그리스 미술의 절정이라고 할 수 있다. 프락시텔레스의 <헤르메스와 어린="" 디오니소스="">는 18세기 독일 미술학자 빙켈만이 해석한 바에 따르면 아름답고 유연한 ‘우미’로 특정지어진다. 한 쪽 다리로 체중을 유지하는 콘트라포스트 자세와 조화미, 비례미, 균형감이 완벽한 것이 특징이다.헤르메스와>
헬레니즘 시기의 작품 양식은 모방자의 양식이라고도 부른다. 소 아시아,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같은 그리스 식민지에서 나온 양식으로 기원전 50년에 제작된 ‘라오콘 군상’에서 보이는 것 같이 고전주의 양식보다 좀 더 연극적이다. 전 시대에 발달했던 이상화는 약화되고 보다 사실적이고 육감적이면서 육체의 운동과 정신적인 격동을 표현하고자 하였다. 거칠고 격렬하며 관능적인 것이 특징이다. 특히 라오콘 군상은 격렬함과 긴장감으로 충만 되어 있는 파토스 표현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이 조각은 트로이의 사제인 라오콘이 그의 아들들과 죽음을 앞두고 뱀과 맞서 싸우는 고통의 순간이 실감나게 표현되어 있다. 빙켈만은 이를 ‘고귀한 단순함과 고요한 위대함’이라 불렀으며, 육체의 고통을 정신의 힘으로 누르고 있는 고전적인 아름다움의 이상이라 평가했다.
전성기 르네상스와 매너리즘
전성기 르네상스는 피렌체로부터 로마, 베네치아로 이동하여 3명의 천재화가가 탄생하는데, 엄격한 구도와 완벽한 비례, 원근법 등으로 르네상스 회화발전의 정점이 이룩되었다. 우선 레오나르드 다빈치는 다방면에서 뛰어난 재능을 보인 르네상스적 전인이었다. 그의 <모나리자>는 전성기 르네상스 회화의 기준을 확립하는데, 주인공의 머리 뒤 소실점으로 선이 집중되는 원근법, 기하학적 중요성이 강조된 삼각형 구도, 해부학적 지식, 명암대조법과 스푸마토 기법으로 3차원적 형체로의 착각을 보여주었다. 모나리자는 뒤샹, 워홀, 제스퍼 존스 등 수많은 후대 작가들에 의해 활발히 재생산되는 작품이기도 하다. 밀라노 산타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수도원의 벽화 <최후의 만찬="">은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종교화로서 마태복음의 한 구절을 회화화한 것이다. 그리스도 눈으로부터의 선원근법과 후광 같은 상징적 건축의 구도, 완벽한 균형감과 안정감이 뛰어난 작품이다. 또 한 명의 천재 작가 미켈란젤로는 23세 때의 작품 <피에타>에서 피라미드 구도와 성모마리아의 평온한 얼굴로 그리스 조각의 사실적 표현을 이뤄냈다. 로마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화 <아담의 탄생="">, <최후의 심판="">은 340여개의 인물상을 그려냈는데, 미식축구장 1.5배의 크기인 만큼 그의 예술에 대한 열정을 여실히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라파엘로는 3명의 천재 화가 중 가장 대중적으로 사랑받았던 화가로서 레오나르도의 서정성과 미켈란젤로의 극적, 회화적 풍요로운 화풍을 접목시켜 견고한 미술, 르네상스의 이상적 아름다움을 완성해냈다. 성모상의 원형이 된 <대공의 성모="">를 비롯, <아테네 학당="">, <교황 레오 10세의 초상>등이 대표작품이다.아테네>대공의>최후의>아담의>피에타>최후의>모나리자>
르네상스 후기는 1520년 경부터 1600년 가지로 흔히 마니에리즘이라 불리는데, 이탈리아어의 ‘디 마니에라’에서 유래된 것으로 일정한 규범의 양식이란 뜻이다. 이 시기에는 르네상스의 이상미, 조화, 현실성 대신 부조화와 감성, 상상력 등으로 형태의 기이한 왜곡과 변형이 시도된다. 인물 표현도 인위적, 기교적 스타일로 인물의 몸체가 한껏 뒤틀려 있거나 육체가 늘어져 묘사된다. 정신사로서의 미술사를 전개한 막스 드보르작에 따르면, 예술에 있어 정신주의적 경향을 강조하는데, 이에 따라 매너리즘의 경향이 재평가되었다. 즉, 마니에리즘의 모방, 변형, 왜곡이 정신성의 결여가 아닌 종교적 체험의 심화와 내면화이며, 따라서 최초의 근대적 예술양식이라는 것이다. 이 시기 루터의 종교개혁, 교황 권위의 실추, 지동설의 발견 등 불안정한 시대, 무질서와 혼란을 반영하여 다소 몽환적인 분위기와 기괴한 배경, 과장된 인체와 비례의 왜곡 등의 표현이 생겨난 것이며 이는 시대정신의 표출이라고 말하였다. 대표적 작가와 작품 파르미지아니노의 <긴 목의="" 마돈나="">에서처럼 목, 팔, 다리가 늘어진 육체의 왜곡을 보여주며, 조화와 안정을 의식적으로 기피하고 있다. 틴토레토의 <성 마르코의="" 유해="" 발견="">, <최후의 만찬="">은 대각선의 구도, 불균형한 화면으로 혼란을 극적으로 보여준다. 엘그레코의 <오르가스 백장의="" 매장="">에서도 변형과 불균형, 과장이 보여지는데, 신비한 내면성을 지닌 천상과 지상의 동시 드라마로 구성되어 있다.오르가스>최후의>성>긴>
신고전주의와 낭만주의
신고전주의는 바로크, 로코코에 대한 반동으로 일어나 그리스, 로마 미술을 모범으로 삼고 이상에 바탕을 둔 캐논(규칙) 즉, 엄격하고 균형잡힌 구도와 뚜렷한 윤곽선을 중요시했다. 반면에 낭만주의는 아카데미즘에 대항하여 감성을 바탕에 두고 상상력, 창의력, 감정표현을 중요시했다. 계몽철학을 중시한 앵그르의 인간 이성과 낭만 철학을 중시한 들라크루아의 감성 간의 대립은 이성과 감성의 고찰로, 이후에도 끊임없는 논쟁을 낳앗다. 회화적인 표현에 있어서도 앵그르는 <드 브로그리="" 왕자비의="" 초상="">에서 보듯이 붓터치조차 허락하지 않는 사진과 같은 매끄럽고 뚜렷한 윤곽선, 선과 형태의 묘사, 설명적 측면과 절제되고 다듬어진 형식, 원근법적 구도와 거리감 등 시각적 사실을 중시한 반면, 들라크루아는 <사르디나팔의 죽음="">에서와 같이 윤곽선 없이 보색의 선명한 색의 대비, 불안정한 대각선 구도, 상상력에 의한 재구성 등의 상반된 특징을 보여준다. 즉, 19세기 프랑스 계몽철학과 낭만철학의 대립이 회화사조에서도 보여지는 것이다.사르디나팔의>드>
종합
서양회화에서 선과 색채의 대립은 끊임없이 이어져왔는데, 예컨대 바로크 시대 프랑스 화가 푸생은 정확한 선과 소묘를 중시했으며 루벤스와 램브란트는 색채를 중요시했다. 신고전주의 다비드와 앵그르 그리고 낭만주의 들라크루아도 선과 색채로 대립했으며, 19세기 사실주의는 선과 소묘를, 인상주의는 빛과 색채를 추구했다. 이러한 회화사조의 대립은 예술가들의 아방가르드적 성향에 기인한다고 보여진다. 즉, 전시대 예술의 규칙을 탈피하고 새로운 예술을 정초하고자 하는 예술적 도전정신의 발로인 것이다.
결론적으로 낭만주의가 후대 미술에 미친 영향은 상당한데, 아르놀트 하우저에 따르면 낭만주의는 서양 정신사에서 가장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즉, 르네상스 이래 합리주의가 낭만주의에 의해 타격을 입었다는 것이다. 18-19세기 근대사와 맥을 같이하는 낭만주의는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을 대두로 민주시대를 열면서 “예술이 모던해야 하고, 살아 움직여야 한다.”라는 믿음을 기저에 두었다. 낭만주의가 중요시했던 개인의 감정표현과 색채를 인상주의의 드가, 모네, 쇠라, 후기인상주의 고흐가 받아들이고, 야수파 마티스의 색채해방으로 까지 이어진다. 또한 현대예술의 미묘하고 분화된 인상, 과도한 감정, 난폭과 무질서 등이 낭만주의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