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노트를 사다

오랜만에 마음에 드는 노트를 샀다. 공책에도 유통기한이 있는 걸까? 사놓고 잘 쓰지 않는 노트가 이미 많은데도, 꼭 새 노트를 사야만 무언가를 제대로 써볼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다행히도 이번에 산 노트는 꽤 유용하게 쓰고 있다. 아침에는 그날의 할 일을 적고, 오후에는 무거워진 머리를 비워내는 용도로, 그리고 밤에는 ‘지금은 피곤해서 하기 싫지만 언젠가 할 일’을 적는다. 여러 목적을 동시에 수행하면서 도무지 다시 읽을 수 없는 텍스트 분리수거장이 되고 말았지만, 물리적으로 무언갈 적는 것만으로도 묘한 안정감이 들기에 그 나름의 효용은 분명하다고 할 수 있다.

이 노트의 사이즈는 B7이다. 손바닥에 들어올 만큼 작은 사이즈여서 불편하진 않을까 걱정했는데, 최대한 줄여 적으면 그런대로 쓸 만하다. 예를 들면 ‘오전에는 도서관에 갔다가, 점심시간에 장을 보고 집으로 돌아가야지’라는 내용은 ‘도서관 → 마트 → 집(혹은 도 - 마 - 집)’이라고 쓸 수 있다. 어떨 때는 ‘이쯤 적으면 나중에 봐도 이해하겠지’라는 마음으로, 도중에 쓰다 마는 문장도 있다. 조금 느리더라도 종이에 무언갈 적는 기쁨을 누려보겠다고 산 것인데, 문장 하나를 마치기도 전에 질리고 만다는 게 썩 자랑스럽지는 않다.

하루에도 여러 번, 글씨를 쓸 때보다도 더 만족스러운 기분으로 노트를 덮고 이리저리 둘러본다. 형광의 커버가 언제 보아도 마음에 든다. 조금 과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보면 볼수록 이 색으로 사길 잘했다. 카페나 도서관에서도 커버의 영롱함을 자랑하고 싶어 일부러 덮어둔다. 가격은 비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