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카리즈무의 일상물(日常物)

안도 사쿠라가 주연으로 나오는 일본의 드라마 브러쉬업 라이프를 단숨에 정주행했다. 죽은 후에 다른 생명으로 환생하거나, 환생하려는 생명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더 나은 생명으로 환생하기 위해 기존의 인생을 다시 살면서 만회할 수 있다는 내용의 타임리프 드라마이다. 흔히 인생을 다시 살게 된다면 주식으로 떼돈을 번다거나, 아니면 커다란 재앙을 미리 경고하여 사람들을 구하는 등의 거창한 것들을 떠올리게 되지만, 드라마 속 주인공의 2회차 인생은 공부를 조금 더 잘해서 같은 대학교의 더 나은 학과에 입학하는 정도의 사소한 변화가 있을 뿐이다.

안도 사쿠라의 연기는 물론이고, 극중에서 인물들이 나누는 대화가 지극히 일상적이면서도 소소한 웃음을 짓게 만드는 매력이 있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보았다. 알고 보니 바카리즈무라는 일본의 개그맨이 각본을 썼다고 하여 곧장 그에게 흥미가 생겼고, 그가 각본가로 참여한 작품들을 몰아 보기에 이른다.

그중 가공OL일기는 그가 약 3년 동안 인터넷상에서 은행에 근무하는 OL(오피스 레이디)인 척하며 가상의 일상을 연재한 블로그를 바탕으로 제작된 드라마이다.1 예능인으로 활동하던 그가 수입이 없던 시절 친구들을 웃게 하기 위한 목적으로 시작한 블로그였으나, 그의 예리한 관찰력이 독자들로 하여금 블로그 속 여성을 실존하는 인물이라고 완전히 믿게 만들었고, 큰 인기를 끌어 책으로도 출간되었다고 한다. 동료 은행원들이 나누는 소소한 일상의 대화가 거의 전부인 드라마인데도 묘하게 자꾸 보게 되는 매력이 있다.

그의 작품을 보고 있자니 ‘진짜 같지만 전혀 진짜일리 없는’ 리얼한 일상물이 주는 매력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최근에 넷플릭스에서 연재된 핫스팟을 보며 과연 그가 다른 이야기하기의 귀재라고 느꼈다. 환생, 외계인 같은 과학적이고 비일상적인 소재에 대해 거창하게 바라보기보다는, 일상에 미묘한 균열을 일으키는 정도의 상상으로 소소한 웃음과 신선한 재미를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