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모방론 비교

플라톤은 미(美)란 보고 들을 수 없는 것이라고 주장하였고, 그것은 ‘객관적인 미론’을 의미했다. 그는 세계는 1) 원형인 이데아, 2) 복제물인 현실, 3)복제의 복제물로 이루어져 있다고 보았다. 플라톤은 이성적 세계와 감각적 세계의 모든 모순을 극복하려고 하였다. 그가 말한 절대적 존재인 이데아는 이를 인식하기 위한 정신의 적극적이며 능동적인 자세도 포함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3)과 같은 경우는 본질의 모방(mimesis)을 모방한 것, 따라서 2차 모방이기 때문에 가장 저급한 것으로 판단했고 전혀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기술을 ‘획득적인 것’과 ‘생산적인 것’으로 분류했다. 그리고 획득적 기술은 ‘실천적 기술’과 ‘인식적 기술’로 분류되고, 생산적 기술은 신적인 자연의 생성과 인간적인 생성인 모방기술, 즉 예술로 분류된다. 그리고 플라톤은 이들 가운데 예술과 인식적 기술을 모방적 기술이라 부른다. 인식은 덕(사물의 본질)을 획득적으로 모방하고, 예술은 자연을 생산적으로 모방하는 것이다.

예술을 이와 같이 규정한다면, 예술의 합목적성과 진리성이 문젯거리로 등장하게 된다. 플라톤에 의하면 기술은 단순히 육감이나 경험적 숙달로부터 순수한 학적 인식(學的 認識)1에 이르는 온갖 종류의 이론적 지식 및 방법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그리고 제작적, 모방적 기술인 예술의 진리성은, 같은 모방적 기술인 이론적 인식과 대비되어 낮은 단계를 차지해야만 했다. 그는 침대를 만드는 직인보다 화가를 낮게 위치시켰으며, 그것은 예술의 대상과 내용이 예술가의 대상인식의 정도에 직접 관련되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에게 회화는 모조품 및 외관을 표현하는 것으로서 여러 예술 가운데서 가장 부정적으로 평가되고, 연극, 조각, 건축 등은 대상을 전형으로서 파악하고 균제와 조화에 보다 적합한 것으로 회화보다 높게 평가되었다. 그리고 운율과 조화 그 자체를 표현하는 음악과 시는 가장 창작적인 예술로서 특별히 ‘포이에시스’라고 불렸다. 어찌됐든 결국 플라톤에게 있어서 회화나 조각은 기만적인 눈속임 혹은 지각적 환영(illusion)제작의 도구일 뿐이다. 플라톤에 따르면 그것들은 우리에게 진리를 전달해 주지 못하는 일고의 가치도 없는 것이다. 

이러한 비난의 이면에는 그의 형이상학이 전제되어 있다. 그는 기본적으로 존재론적 이원론을 상정하고 있는데, 이데아의 모방인 현상계를 또 다시 모방한다는 것은 그가 보기에 아무런 쓸모도 없는 것이었다.

반면, 이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입장은 다르다. 그는 존재하는 모두를 형상과 질료라고 하는 목적론적이며 역동적인 상관관계에 놓고 봄으로써 플라톤이 다루었던 대상을 모두 문제로 삼으면서도, 미와 예술 일반의 개념규정보다는 오히려 그것이 현실에서 작용하는 경험적이며 심리적인 과정에 관심을 기울였다. 그리고 여기서 자연과학적인 분석과 개개 사실의 합목적적인 위치설정과 그것의 존재론적인 층에 있어서의 의미의 해명을 이룩하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제작으로서의 예술의 본질을 모방의 개념으로 포괄하고, 이에 따라 예술 향수의 측면에 대해서는 미적 효과로서의 카타르시스를 생각했다. 그리고 이 두 개의 개념을 오로지 심리적으로 고찰함으로써 예술의 독자적인 의의를 적극적으로 인정했다. 그에게 모방은 인간의 본능이자 ‘무엇을 아는 즐거움’을 얻는 중요한 수단이다. 즉, 사물의 본질이 물질적으로 존재하는 사물 속에 들어 있다고 믿으면서 플라톤의 모방론보다 현상을 중요시하는 ‘본질 모방론’을 제시했다.

예술의 모방은 고도의 기술적 제작으로서 단순한 습관에 의한 직인적 제작과 대립된다. 왜냐하면 예술의 모방은 그 합목적성에 있어서는 자연의 생성원리와 비교되지만, 이와 같은 합목적성은 예술가가 자각한 의도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존재의 기반을 현상계로부터 출발하였다. 그는 식물과 동물의 생태계를 연구하면서 영혼과 육체의 관계도 고찰했다. 『영혼에 관하여』에서 그는 영혼이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실체이며 일시적으로만 육체 속에 살 뿐이라는 플라톤의 견해를 배척했다. 그 대신 물질적 존재의 긍정적 가치를 더 강조하면서 영혼을 육체의 형상, 육체를 영혼의 질료라고 정의했다.

플라톤은 지혜와 이성이 지배하는 이상적인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우선 시인들을 몰아내야 한다고도 말하였지만, 아리스토텔레스의 생각은 달랐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가 모방하는 것이 가시적인 외계의 사물이 아니라 가시적인 사물들의 배후에 숨겨진 보편적인 원리라고 주장했다. 숨겨진 것을 모방한다는 주장에는 모방이라는 행위에 대한 독창적인 견해, 즉 단순한 미메시스가 아니라 무언가를 발견하는 행위라는 생각이 담겨 있다. 그리하여 부정적인 가치로서 플라톤에 의해 배척되었던 예술의 본질은,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해 유익하면서도 생산적인 가치라는 해석을 얻게 된다. 

모방론은 르네상스 시대에 와서 좀 더 확고한 자리를 잡는다. 르네상스 예술은 그 최고의 이상을 자연의 완전한 질서와 고결한 인간적 덕성을 모방하는 데 두었고 전 시대의 훌륭한 예술적 규범조차도 모방의 대상으로 삼았다. 훌륭한 예술적 가치는 예술 작품을 답습하고 모방함으로써 획득될 수 있다고 믿어졌던 것이다. 이러한 이상은 독창적인 가치와 개성을 추구한다는 예술적 이상과는 판이한 것이다.

미메시스가 가치 있는 것에 대한 모방이라는 아리스토텔레스에 원천을 두는 서양 미술사의 전통적인 믿음은 상징주의와 낭만주의 미술에 의해 비로소 거부당한다. 상상력과 개성적인 표현이 중시되던 낭만주의 시대에서는 이러한 모방론이 설득력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머지 않아 인간의 사회적 경험에 근거해야 한다는 사실주의 미술이 대두하면서 모방론은 금새 상실했던 영향력을 회복한다. 모방의 대상이 개연성이든, 자연이든, 또는 인간의 사회적 경험이든, 그것이 대상을 미술이라는 수단을 통해 재현한다는 원리에 있어서는 다르지 않다. 따라서 리얼리즘 또한 모방론이라는 뿌리로부터 싹트고 발전해온 세계관이라 볼 수 있다.

  1. 감각이나 경험이 아닌, 이성을 통해 얻어지는 체계적이고 이론적인 앎. 플라톤 철학의 ‘에피스테메(episteme)’에 해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