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사로서의 미술사
‘정신사로서의 미술사’라는 표현은 막스 드보르작의 주요 논문을 편집한 편집자가 붙인 표제인데, 이 말은 뵐플린과 리글로 대표되는 ‘양식사로서의 미술사‘에 대비되는 당시 미술사 연구의 또 다른 주요 경향을 가리킨다. 드보르작은 “예술은 인류를 지배하는 이념의 표현이며, 그 역사는 종교나 철학 혹은 문학의 역사에 뒤지지 않는 일반 정신사의 한 부분을 이룬다”고 말했다.
사실 리글도 이미 《후기 로마의 공예》에서 미술사와 정신사의 병행을 주장한 바 있고, 빌헬름 보링거는 《추상과 감정이입》(1908)에서 미술사를 인간성의 심리학으로 보고 이를 종교적·철학적 발전과의 연관 속에서 고찰했다. 이런 점에서 정신사로서의 미술사도 양식사와 완전히 단절된 것이 아니라 그 연장선상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드보르작의 입장이 뚜렷이 드러나는 것은 특히 뵐플린류의 순수 형식적 고찰법과 비교할 때이다. 뵐플린은 문화사가 부르크하르트의 제자이면서도, 피들러의 영향을 받아 양식의 자율성을 강조하고 그 내재적 전개 법칙을 규명하는 것을 과제로 삼았다. 그의 방법은 사실의 관찰에 기본적인 객관성을 가지며, 무엇보다 미술사의 자율성을 다른 역사 영역들로부터 엄밀하게 지켜냈다. 반면 드보르작은 미술을 종교·철학·문학과 같은 정신적 이념의 표현으로 보고, 그 역사를 일반 정신사 속에서 파악했다. 이 점에서 두 입장은 분명히 대립한다.
드보르작이 지향하는 정신사적 연구는 거시적으로 볼 때 19세기 말~20세기 초 유럽의 새로운 정신 조류에 대응한 것이다. 이는 자연과학의 객관적·실증적 방법에 맞서 독자적인 근거와 방법을 모색하는 정신과학의 경향이었다. 빌헬름 딜타이의 생철학도 그에게 영향을 주었고, 인간 정신의 무의식적 영역을 탐구한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역시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으리라 생각된다.
미술사학 내부에서 이러한 경향의 선구적 업적을 이룬 것은 빈 대학에서 드보르작의 전임자였던 리글이다. 리글은 ‘예술의지’ 개념을 통해 양식과 양식의 변천을 결정하는 것이 개인을 초월한 어떤 정신적 힘임을 보여주려 했다. 드보르작의 정신사적 연구는 리글의 ‘예술의지’를 더욱 밀고 나간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경향은 당시 조형예술 자체의 흐름과도 호응했다. 드보르작의 정신사적 연구는 19세기 말~20세기 초 상징주의에서 표현주의로의 전환, 특히 제1차 세계대전 전후의 표현주의적 시대 분위기와 맞물려 있다. 표현주의에서 형태는 단지 자율적 형식이 아니라 내적 체험에 의해, 나아가 시대정신이나 세계관에 따른 의미로 충만한 형태, 즉 정신적 근본 태도의 표현으로서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드보르작이 역사상 위기의 시대나 전환기—예컨대 중세에서 르네상스로의 전환, 마니에리즘 등—를 즐겨 다룬 것도 이 정신적 관계를 보여준다.
드보르작이 리글의 양식 분석 자체를 버린 것은 아니다. 형식론적 고찰은 그에게도 기초가 되었다. 그는 도상적 의미 내용의 해명으로 향하기보다 양식적 특징과 정신사적 근본 경향의 관련을 문제 삼았다. 그가 비판한 것은 미술사의 자율성을 지키기 위해 정신문화의 다른 영역들과의 의미 있는 연계를 끊어버리는 태도, 주로 뵐플린류의 양식사였다. 드보르작에 따르면 각 역사적 시기의 시대정신이나 세계관은 그 시대 정신적 형성물 일반의 공통분모이며, 미술작품의 표현형식은 언제나 이 공통분모와의 관계에서 고찰되어야 한다. 한마디로 그가 지향한 것은 양식사와 정신사의 통합이었다.
리글의 예술의지 개념을 독자적으로 발전시킨 또 다른 인물이 보링거이다. 그의 《추상과 감정이입》 이래 여러 저서들은 그때까지 주변적 사실로 무시되어 온 원시 민족이나 동방 민족의 예술에 주목하는 계기가 되었다. 보링거에 따르면 예술 표현에는 두 방향이 있다. 하나는 그리스 미술이나 르네상스 미술의 사실적·자연주의적 방향이고, 다른 하나는 이집트 미술이나 비잔틴 미술의 기하학적·추상주의적 방향이다. 그에 따르면 자연주의적 예술은 인간과 자연이 범신론적으로 행복한 조화 관계에 있을 때 나타나는 ‘감정이입 충동’에 기초한다. 반면 추상적 예술은 생명을 억압하는 표현으로서, 인간과 외적 자연의 부조화와 분리의 감정, 즉 내적 불안에 근거한 ‘추상 충동’에서 생겨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