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니에리즘
예술역사학자들은 1520년경부터 1600년까지를 흔히 마니에리즘기로 불렀는데, 이는 이탈리아어의 ‘디 마니에라’에서 유래된 것으로 ‘일정한 규범의 양식’이란 뜻을 갖고 있다. 원래는 조르조 바사리가 미켈란젤로의 ‘완성된 양식’을 칭찬하는 맥락에서 사용한 긍정적인 뜻을 가진 용어이다.
1517년 루터의 95개조 반박문, 1527년 로마 약탈,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1543) 등 기존 질서가 흔들리던 시기에 등장했다. 로마 약탈로 르네상스 예술의 중심지가 파괴되면서 예술가들이 각지로 흩어졌고, 이것이 마니에리즘 확산의 계기가 되었다.
이 시기에는 르네상스의 이상미, 조화, 이성, 현실성 대신 부조화와 감성, 상상력 등으로 형태의 기이한 왜곡과 변형이 시도된다. 17세기 조반니 피에트로 벨로리는 바로크를 옹호하며 마니에리즘을 자연에서 벗어난 타락으로 비판했고, 이 관점은 19세기 야코프 부르크하르트까지 이어졌다. 이렇듯 17~19세기에 마니에리즘은 ‘지나치게 독특하고 자연성이 없으며, 관습적이고 부자연스러운’ 의미를 가진, 고전예술의 쇠퇴 또는 종말의 시기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20세기에 들어, 예술에 있어 정신주의적 경향을 강조했던 막스 드보르작은 《이념으로서의 미술사》(1924)에서 마니에리즘의 왜곡이 정신성 결여가 아닌 종교적 체험의 심화와 내면화라고 주장하며, 마니에리즘을 최초의 근대적 예술양식으로 바라보았다. 아놀드 하우저는 《예술의 사회사》에서 마니에리즘을 최초의 근대적 양식이자 표현주의, 초현실주의의 선구로 위치시켰다. 또한 프레드릭 제임슨은 《포스트모더니즘, 혹은 후기 자본주의의 문화 논리》(1991)에서 마니에리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의 유사성을 지적했다.
양식적 특징으로는 세르펜티나타(뱀처럼 꼬인 자세), 인체의 왜곡과 늘어난 비례, 조밀하게 채운 화면, 장식성, 불안정한 구도, 비자연적 색체 등이 있다. 대표작으로는 파르미지아니노 〈긴 목의 마돈나〉, 엘 그레코 〈오르가스 백작의 매장〉, 틴토레토 〈최후의 만찬〉, 브론치노 〈비너스와 큐피드의 알레고리〉, 폰토르모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그리스도〉 등이 있다. 건축에서는 줄리오 로마노의 팔라초 델 테가 고전 건축 문법을 의도적으로 위반한 사례로 꼽힌다.
라파엘로와 미켈란젤로가 도달한 ‘완성’ 이후, 더 이상 같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없었던 예술가들은 의도적으로 규범을 벗어났다. 폰토르모와 로소 피오렌티노는 스승 안드레아 델 사르토의 균형 잡힌 양식을 거부하고 불안정한 구도와 강렬한 색채를 실험했다. 이는 조르조 바사리가 말한 ‘그라치아’(grazia), 즉 규칙을 넘어서는 우아함의 추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