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콜 르페라의 『관계의 뇌과학』 을 읽고
『관계의 뇌과학』은 우리가 다른 사람과 어떤 방식으로 관계를 맺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더 건강한 관계를 맺는 방법을 제시하는 책이다. 작가는 존 볼비의 ‘애착이론’을 토대로 과거 우리가 부모상과 어떻게 관계를 맺었는지에 따라 우리의 관계상이 결정되며, 성인이 되어서도 그것을 스스로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부모는 우리가 태어나 처음 관계를 맺는 사람이기 때문에 이 관계에서 뇌에 패턴이 생기고, 이 패턴은 거의 평생 동안 자동적 또는 본능적으로 우리의 사고, 감정, 반응을 활성화하고 통제한다는 것이다. 작가는 이러한 패턴으로부터 우리를 ‘구출’하고 ‘온전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것이 나와 맺는 관계의 첫걸음이며 다른 사람들과 더 진실되게 관계를 맺는 첫걸음이라는 것이다.
작가는 아동기 트라우마는 학대, 방임, 근친상간, 강간 같이 삶을 뒤흔드는 사건들만 포함되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많은 사람에게 아동기 트라우마는 좀 더 미묘한 형태를 띄며, 우리의 대처 능력을 압도하는 인지된 스트레스라면 무엇이든 아동기 트라우마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아동기에 일관적인 정서적 안정을 느끼지 못했다면, 어떠한 의미로든 트라우마로 작용할 수 있다.
책에는 아동기 관계 형성에 따라 타입을 나누는데, 나의 경우와 가장 닮아 있다고 느낀 것은 ‘저성취자형’이다.
저성취자형 | 바람직하지 않은 부분을 다른 사람에게 숨김으로써 평가와 판단으로부터 도망가 안전을 유지하려 든다. 사랑받을 수 있는 유일할 방법은 관계에서 존재감을 최소화하여 눈에 띄지 않는 것이라고 믿는다. 자기 가치감이 낮고 비판을 두려워하며, 잠재적인 거절에 대비해 자신을 보호하려고 정서적으로 거리를 두거나 회피하거나 발을 뺀다. 뿌리 깊은 무가치감을 증명해 주는 부정적인 관심을 받기 위해 간혹 지나친 행동을 할 수도 있다. 저성취자의 신경계는 대개 주의 분산 모드와 분리 모드 사이를 오간다. 주의 분산 모드일 때는 자기비하적이거나 스스로를 수치스러워하는 생각에 빠진다. 분리 모드일 때는 동기 부여 및 에너지 시스템을 늦춰 의사 결정이나 행동을 미룰 수 있다.
저자는 우리가 관계상의 패턴을 파악하고 더 나은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감사하기, 나의 트라우마 이해하기 등을 이야기하는데, 눈에 띄었던 부분은 ‘심장’의 중요성을 언급하는 장이다. 심장은 실제로 4만 개의 뉴런으로 구성된 ‘작은 뇌’를 갖고 있으며, 뇌와 마찬가지로 심장은 장단기 기억을 모두 저장할 수 있다고 한다. 나아가 우리 대부분이 겪는 문제는 우리가 심장과 교감하고 심장이 일관성을 띠는 상태로 보내는 시간이 설령 있다고 해도 너무 적다는 데 있다고 주장한다. 정신적인 측면을 과도하게 강조하는 여타 도서들과 달리 몸 에너지를 파악하고 심장이 반응하는 패턴을 이해하라는 부분에서 이 책의 개성을 느낄 수 있었다.
또 하나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타인에게 화가 나거나 섭섭함을 느낄 때에 대한 저자의 해석이다. 결국 하나의 ‘현상’을 어떻게 해석하느냐는 나에게 달려 있다. 그리고 그것을 건강하게 해결하는 방법 또한 마찬가지이다.
나는 종종 너무 불편해서 내게 필요한 시간이나 공간을 갖지 못하거나 너무 취약하게 느껴져서 내가 원하는 지지나 교감을 직접 요청하지 못한다. 내가 연인에게 화가 났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 자기 배반적인 내 행동과 그와 관련해서 무시된 내 욕구 때문에 나 자신에게 화가 난 것이다. 이제 내 반응은 내 자원이 바닥났음을 그리고 나 역시 어떤 자기 돌봄이나 지지적인 교감을 통해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책의 마지막이 자신의 다자연애(?)를 공개하는 것으로 끝나서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담긴 내용들은 곱씹어 볼만한 가치가 있다고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