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록색 바다 거품 수치

그가 물었다. “지금 당신이 숨기는 건 뭐야? 그리고 내가 상처받거나 짜증 나거나 실망해서 당신도 약간 상처받고 짜증 나고 실망했다는 말은 하지 마. 당신은 그걸 숨기지 않으니까.”
그녀가 웃었다.
“그래서?”
“난 아무것도 숨기지 않아.” 그녀가 말했다.
“잘 찾아봐.”
그녀가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
“뭐야?”
“차에서 당신이 그저 「그저 사죄할 뿐(All Apologies)」을 부르는데, ‘수치심에서 알 수 있네(I can see from shame).’라고 계속 불렀잖아.”
“그래서?”
“그러니까 그런 가사가 아니거든.”
“당연히 그런 가사야.”
“청록색 바다 거품 수치야(aqua seaform shame).”
“뭐라고!”
“맞아.”
“청록색. 바다 거품. 수치라고?”
“유대 성서에 손을 얹고 맹새해.”
“지금 나의 완벽하게 말이 되는 가사, 그 자체로나 문맥으로나 말이 되는 가사가 사실은 뭐가 됐든 내 억눌린 무언가의 무의식적 표현일 뿐이고 커트 코베인이 의도적으로 청록색 바다 거품 수치라는 단어들을 연결해 놓았을 뿐이라고 말하는 거야?”
“바로 그 말이야”
“흠, 믿을 수가 없군. 그와 동시에 굉장히 당혹스럽네.”
“그러지 마.”
“당혹스러워하는 사람한테 그런 말이 잘도 먹히지.”
그녀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건 쳐 줄 수 없어. 좋은 걸로 내놔 봐.”

제이컵이 샘의 침대에 앉아 말했다. “아빠가 어릴 때, 아마 고등학교 때쯤에 제일 좋아하는 노래 가사를 전부 적는 걸 좋아했어. 왜 그랬는지는 몰라. 아마 그래야 모든 게 제자리에 놓이는 기분이 들었나 봐. 하여간 인터넷이 나오기 한참 전이었어. 그래서 아빠 붐 박스를 끼고 앉아서…….”
붐 박스요?”
“스피커가 달린 카세트야.”
“빈정거린 거예요.”
“좋아……. 음…… 붐 박스를 끼고 앉아서 노래를 조금 틀었다가 들은 것을 적고 다시 돌려서 맞게 썼는지 확인했어. 그러고서 다시 틀고 조금 더 쓰고, 전혀 못 들었거나 긴가민가한 부분을 되감기해서 적었어. 테이프는 정확히 되감기가 정말 어렵거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너무 많이 감거나 충분히 안 감거나 했지. 엄청나게 힘이 들었어. 하지만 아빠는 그게 정말 좋았단다. 아주 조심스럽게 느껴지는 게 좋았어. 제대로 맞는 느낌이 아주 좋았지. 그 짓을 하느라고 얼마나 많은 시간을 썼는지 모른단다. 가끔은 가사를 알아듣기가 정말로 어려웠어. 그런지나 힙합이 나오고 나서부터는 말할 것도 없었고. 그리고 아빠는 절대로 어림짐작으로 넘어가지 않았거든. 그러면 가사를 받아 적는 일의 의미가 완전히 훼손될 테니까. 제대로 해야 하는데 말이지. 가끔은 똑같이 짧은 부분을 수십 번, 수백 번을 듣고 또 들어야 했어. 말 그대로 테이프의 그 부분이 다 닳아서 해질 정도였지. 그래서 나중에 그 노래를 들어 보면 제일 제대로 쓰고 싶었던 부분은 안 나오는 거야. 「그저 사죄할 뿐(All Apologies)」의 한 구절이 기억나는구나. 너도 그 노래 알지?”
“몰라요.”
“너바나를 모른다고? 정말, 정말 위대한 노래인데. 하여튼 커트 코베인은 남은 제정신이 다 입으로 옮겨 간 것 같았어. 아빠가 특히 알아듣기 어려웠던 구절이 하나 있단다. 수백 번을 듣고 나서 아빠가 짐작한 바로는 ‘수치심에서 볼 수 있네.’였어. 몇 년이 더 지나서 엄마랑 아무 생각 없이 목이 터져라 부르다가 비로소 아빠가 틀렸다는 걸 알았단다. 결혼한 지 얼마 안 됐을 때였어.”
“엄마가 틀렸다고 알려 줬군요?”
“그랬지.”
“엄마답네요.”
“아빠는 고마웠단다.”
“하지만 아빠가 노래하고 있었잖아요.”
“틀리게 부르고 있었지.”
“그래도요. 그냥 부르게 놔뒀어야죠.”
“아니야, 엄마는 해야 할 일을 했어.”
“그래서 진짜 가사는 뭐였어요?”
“마음 단단히 먹어. ‘청록색 바다 거품 수치’였어.”
“말도 안 돼요.”
“그렇지?”
“그게 대체 무슨 의미가 있기는 해요?”
“아무 의미도 없어. 그게 아빠의 실수였어. 뭔가 의미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거.”
-내가 여기 있나이다』, 조너선 사프란 포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