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병원에 입원했을 때 스물일곱의 나에겐 죽음이라는 존재가 낯설었고, 가장 먼저 보인 반응은 모든 문을 닫는 것이었다. 당시에 내가 위로를 얻었던 문장은 이런 것이었다.
어떤 회복은 원상복귀가 아니라 절단과 정리다. - 『시의 인기척』, 이규리
아빠가 힘들어한다고, 엄마와 나도 힘들다고, 희망을 말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그런데 병원에 가면 우리 같은 사람이 수두룩하다고, 병을 치료받기 위해 긴 줄을 서야 한다고, 한 달을 넘게 기다려야 한다고 터놓을 사람이 없었다. 터놓는 방법도 몰랐다. 아니, 터놓아서는 안 될 것만 같았다. 이 상황을 이해하고 싶어서, 공감할 누군가가 필요해서 비슷한 상황에 처한 이들의 책을 찾아 읽었다. 롤랑 바르트의 『애도 일기』와 김진영 선생의 『아침의 피아노』 그리고 이규리 시인의 『시의 인기척』이 그것이었다. 롤랑 바르트는 자신이 어머니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지 않다면 그녀가 이 세상에 존재했다는 사실은 영영 사라지고 말 것이고, 그것을 견딜 수 없어 글을 썼다고 한다. 나는 그들의 견딜 수 없는 감정이 적힌 문장을 읽으며 간신히 견뎌낼 수 있었다. 그 책들로부터 큰 위로를 받았고, 많은 빚을 졌고, 나도 나의 슬픔을 — 정확히 말하자면 슬픈 상태에 처한 나의 일상을 블로그에 적기 시작했다. 쓰는 것으로도 위로받았고, 위로받은 감정들에 대해서도 적었다. 위로받을 감정이 다 사라져 없어졌는데도 관성처럼 무엇이든 적었고, 벌써 7년이 지났다.
얼마 전 서른네 번째 생일이 지났다. 생일이 지나면 더 이상 나이를 이야기하는 게 즐겁지 않다. 물론 나이에 대해 대단히 예민한 감각을 갖고 사는 편은 아니다. 교과서적인 인생 커리큘럼은 열심히 따라본 적이 없으니까. 그럼에도 제 나이보다 두 살 낮추어 말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살까 말까 고민하던 제품의 할인이 끝났을 때 드는 아쉬움 비슷한 감정이 있다. 딱히 누군가 나의 나이를 물어온 적도 없기에 이 감정이 더욱 우습다.
벚꽃이 한창이던 4월, 엄마가 갑자기 아팠다. 일하는 곳에서 감기를 옮았는데 폐렴으로 번진 것이다. 엄마는 당신이 좋아하는 봄의 꽃구경도 하지 못하고, 손꼽아 기다렸던 제주도 단체 여행도 포기해야 했다. 일이 끝나면 1-1 버스를 타고 엄마가 있는 병원에 갔다. 엄마 집에 들러 필요하다는 수건과 빗을 챙겨다 주고, 냉장고에서 썩어가는 딸기를 대신 버렸다. 엄마는 폐렴도 옮는다며 두 시간 가까이 걸려서 온 나를 10분도 채 안 되어 돌려보냈다. 머리를 감지 못해 답답하다기에 그러면 감겨주겠다고 했더니 내일 병문안 오는 친구에게 부탁하면 된다며 거절했다. 엄마는 다음 날 혼자 머리를 감았다.
더디지만 천천히, 엄마는 조금씩 기운을 차렸고, 5월에는 이모와 셋이 꽃구경을 다녀올 수 있을 정도로 상태가 좋아졌다. 조팝나무와 이팝나무는 어떻게 다른가, 이제 어떤 꽃이 지고 어떤 꽃이 피는가 이야기하면서 1시간을 금방 걸었다. 엄마는 제주도에서 입으려고 산 분홍색 바람막이를 입고 나왔다. 이모는 꽃 근처에서 셋이 셀카를 찍자며 핸드폰을 보면서 손을 폈다가 주먹을 쥐었다. 그렇게 하면 화면을 누르지 않아도 사진이 찍힌단다. 서울숲으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토끼를 보았다. 이모도, 엄마도, 나도 처음이었다. 엄마는 푸드트럭에서 파는 다코야키가 먹고 싶다고 했다. 우리 셋 모두 배가 불렀지만 다코야키를 한 번도 먹어보지 못했다는 말에 어쩔 수 없이 제일 작은 사이즈로 주문했다. 이모 2알, 엄마 2알, 남은 4알은 내 몫이 되었다.

상대방의 나이와 만남의 빈도를 입력하면 평균 수명을 기준으로 함께할 수 있는 날이 얼마인지 계산해 주는 사이트가 있어, 엄마의 나이와 우리가 만나는 빈도를 입력해 보았다. 3초도 안 되어 결과 창에 1년이라는 숫자가 나왔다. 1년은 정말 금방인데. 어렸을 때는 나를 키워준 어른들의 나이에 대해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런데 요즘은 나의 나이만큼이나 그들의 나이가 신경 쓰인다.
7년 전 아빠는 우리 곁을 떠나면서, 엄마도 언젠가 나를 떠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우리가 영영 건강하리라는 헛된 희망을 품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곤 한다. 그게 좋으면서도 나쁘고, 내가 게으르다는 걸 알면서도 동시에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말을 하면 나는 이미 일반적인 것을 표현한다. 내가 그걸 하지 않으면, 아무도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 - 『공포와 전율』, 쇠렌 키르케고르(Søren Kierkegaa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