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 마라톤을 완주하다
풀 마라톤을 도전하게 된 계기
2024년엔 ‘한 달에 100km 넘게 달리자’는 목표가 있었고, 그렇게 달리기 양을 서서히 늘려 가다가 작년 12월부터는 한 달에 250km 이상을 달릴 수 있게 되었다. 처음으로 30km를 쉬지 않고 달릴 수 있게 되자, 이대로 꾸준히 연습한다면 마라톤 풀코스에도 도전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동아마라톤 멤버십에 신청하면 두 달 뒤에 있을 서울마라톤에 참가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티켓팅에 성공한 나는 본격적으로 풀마라톤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본격적인 연습 과정
목표는 4시간 안에 완주하는 Sub-4
로 정했다. km당 5분 40초 정도의 페이스로 달려야 가능한 기록이다. 이것저것 찾아보니 풀 마라톤을 4시간 안에 완주하기 위해서는 주당 최소 6~70km, 월 마일리지 300km, 32km 이상의 장거리주를 3회 정도 실시해야 한다고. 또한 마라톤을 뛰기에 적합한 몸이 되었는지에 대한 일종의 지표인 Marathon Shape를 계산해 주는 RUNALYZE를 참고해 훈련에 임했다.
2주에 한 번은 30km 장거리주를 달렸고, 달에 한 번은 남산 북측순환로에 가서 업힐 훈련을 진행했다. 1주일에 평균 7~80km를 달렸고 2월에는 난생 처음 330km의 마일리지를 채우기도 하였다.
또한 달리는 시간대를 저녁에서 새벽으로 옮겼다. 대회가 아침 8시에 시작하기 때문에 미리 적응하기 위함이었다. 평일에는 출근 2시간 전에 일어나 10km 정도 조깅을 했고, 주말에는 한강을 따라 30km 이상을 달리거나, 남산 북측순환로에서 업힐 훈련을 진행했다.
식단을 챙기기 시작하다
일주일에 1~2일을 제외하고는 10km 이상을 달리게 되면서 영양소를 골고루, 잘 섭취하는 것이 회복과 운동 퍼포먼스에 상당한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몸소 느끼기 시작했다. 사과, 연어 샐러드, 아몬드 등등 몸에 좋아 보이는 음식들을 챙겨 먹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조금 더 간편하고도 확실하게 영양을 챙길 수 있는 식단을 찾게 되었고, 대회 한 달 전부터는 오버나이트 오트밀을 만들어 먹기 시작했다. 만드는 방법이 간단하면서도 영양소를 골고루 섭취할 수 있는, 나 같이 귀찮음이 많은 사람을 위한 최적의 방법이었다. 먹어보니 맛도 괜찮고 배도 든든해서 앞으로도 꾸준히 해 먹을 생각이다.
감기에 걸리다
한겨울 영하 15도의 날씨에도 아무렇지 않았는데, 오히려 날씨가 풀린 대회 2주 전에 어처구니 없이 감기에 걸리고 말았다. 1주일 동안은 달리지 못할 정도로 아팠다. 테이퍼링이라고 생각하고 푹 쉬었지만 불안하기도 했다. 하지만 불안감을 달래고 지금까지 해 온 연습이 배신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고 무리하지 않았다. 다행히 대회 당일에는 거의 다 나아서 대회를 뛰는데는 큰 지장이 없었다.
레디샷
남들 다 한다는 레디샷도 찍어 보았다.
당일이 되다
대회 당일이 다가왔다. 떨려서 잠은 3~4시간 정도 잤고, 아침으로는 오버나이트 오트밀에 추가로 커스타드 빵을 먹었다. 6시 30분에 도착하니 날씨가 매우 쌀쌀했고 비가 오락가락했다. 우의를 둘러쓰고 다른 주자들과 함께 스타팅 라인에 서서 출발하기를 기다렸다.
달리기
몸상태는 나쁘지도 좋지도 않았다. 목표 기록인 서브4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평균 페이스 5분 40초 정도를 달려야 했기에 해당 페이스에 맞게 큰 무리를 하지 않으면서 적당한 심박을 유지하며 뛰었다. 30km 지점까지는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군자교를 지나면서 업힐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내 몸도 조금씩 부하가 걸리기 시작했다. 특히 이전에는 아프지 않았던 왼쪽 발의 통증이 있었는데 주법이 이상한 건지 신발끈을 잘 묶지 않아서 그런 것인지 모르겠다. 그래도 다수의 장거리주 훈련이 있어서 포기해야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힘들지는 않았던 듯하다. 그러나 페이스가 점점 떨어지는 것을 막을 수 없었고 35~40km 구간에서는 내가 제쳤던 서브4 페이스메이커 분보다 다시 뒤쳐졌다. 그 때는 나보다 빨리 달리기 시작한 그룹의 페이서메이커이기 때문에 더 느리게 달려도 서브4를 달성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완주하고 나서 그게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롯데타워가 보이기 시작하면서 이 긴 달리기도 이제 끝이 나고 있음을 확인하게 되었다. 그 때부터는 마음이 한 결 가벼워져 페이스도 쭉쭉 올라갔다. 마지막 500m 정도는 4분 10초 대의 페이스로 달렸다. 마라톤을 완주했다는 것이 엄청난 기쁨을 가져다주지는 않았다. 오히려 온갖 통증이 밀려오는 기분이었고, 날씨도 엄청 추워서 어서 사우나에 가서 따듯한 물에 몸을 담가야겠다는 생각 뿐이었다. 그래서 완주 메달을 받고 바로 대회장을 떠났다.
그 외 느낀 점
- 답십리 근처에서 꼬마 아이 두 명이 응원을 나와서 주자들과 하이파이브를 했는데, 너무 사랑스러웠고 힘이 많이 났다.
- 마라톤에 도전하는 사람이 이렇게 많을 줄 몰랐다. 그리고 다들 너무 잘 뛴다. 이들이 전국 어딘가에서 적어도 3달 이상을 꾸준히 연습해왔다는 것이 주는 묘한 동질감이 있었다. 중간중간에 쥐가 나거나 부상으로 인해서 걷는 주자들을 보면 힘내라고 소리내어 응원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들이 단순히 의지가 부족해서 멈춘 것은 아닐 것이기에 묵묵히 내 레이스를 펼쳤다.
- 자신의 크루가 아님에도 소리 내어 응원하는 분들, 사진 찍어주시는 분들이 고마웠다.
- 마라톤은 완주만으로도 대단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무리 훈련이 되어있다고 하더라도 30km를 넘어가면 몸이 본능적으로 거부 반응을 일으킨다고 한다. 이번 대회의 우승자가 피니시 라인을 넘어서자 마자 위액을 모두 토해내는 것을 보며 그 정신력에 새삼 감탄했다. 나는 그 정도로 나를 몰아붙이면서까지 뛰지는 않았던 것 같다.
- 대회가 끝나고 집에 오니까 다리는 물론이고 팔까지 아팠다. 완전한 회복까지는 1주일 정도가 소요된다고 한다. 그정도로 강도가 높다는 뜻이겠다.
- 서울의 이곳저곳을 뛸 수 있다는 것이 설렜지만, 정작 뛸 때는 너무 힘들어서 주변 풍경을 둘러볼 생각조차 나지 않았다.
그래서 이제 뭐 할거냐
- 다시 또 꾸준히 조깅 위주로 달릴 생각이다. 그러나 너무 몰아붙이지는 않을 것 같다.
- 트레일 러닝에도 입문해보려고 한다. 페이스에 집착하지 않고 고도를 높여볼 생각이다(대신 조금 더 일찍 일어나야겠지)
- 체중도 더 감량하고 싶다. 달리기에 있어 재능은 곧 체중이라는 걸 절실히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