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의 나는

이사를 했고, 10년은 넘게 가본 적 없던 과천의 대공원을 두 번이나 다녀왔고, 한강과 서울숲, 그리고 북한산 둘레길을 다녀왔다. 31일 중 총 19일을 달렸고, 개중엔 비가 흠뻑 쏟아지는 날도 있었다. 영화는 두 편을 보았는데, 모두 5월 1일에 보았다. 6권의 책을 읽었고, 그중 두 권이 하이스미스의 소설이었다.

5월의 첫날에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내한 행사에 다녀왔다. 상영한 영화는 <어느 가족>이었는데, <브로커>에 출연했던 송강호 배우와 이주영 배우가 함께 하는 자리였다. 가장 기억에 남았던 대화도 두 배우가 안도 사쿠라와 키키 키린에게 표하는 경의 비슷한 찬사였는데, 특히 키키 키린이 틀니를 뺀 잇몸으로 귤을 껍질째 씹어 먹는 장면과 마지막 부분에서 안도 사쿠라의 단독 신을 두고 많은 감상이 오갔던 것 같다. 행사가 생각보다 길어져서, 미리 예매해 놓은 <해피엔드>를 보기 위해 미리 자리를 떠야 했다.

5월 6일은 내 생일이다. 엄마와 이모의 생일도 모두 5월이어서, 우리는 언젠가부터 5월이 되면 함께 만나 식사를 하곤 한다. 이번에는 작약도 볼 겸 과천 대공원에 갔는데, 그날따라 엄마가 속이 안 좋아서 제대로 된 식사를 하지 못했고, 작약은 아직 꽃봉오리가 맺히지도 않았다. 여러모로 운수가 없는 날이었지만, 다행히도 날씨가 좋아 함께 산책을 하는 것만으로도 많은 것이 용서되었다. 엄마와 이모는 가끔 사소한 것에도 티격태격하는데, 그러다가도 봄만 되면 항상 사이가 좋다. 같이 꽃을 보러 다닐 벗이 소중하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아서인지도 모르겠다. 그날 작약을 못 본 것이 내심 아쉬웠는지 둘은 다음 주에도 함께 만나 꽃을 구경했다고 한다. 거리에 꽃이 가득하다면 5월은 아마 잘못을 저지르기에 가장 좋은 달이 아닐까.

새벽 햇살을 받으면 훨씬 더 이쁘다

이사를 오고 나서 한강 공원(A 코스)과 망우역사공원 순환로(B 코스)가 나의 주로(走路)가 되었다. 한강 공원은 풍경이나 고저의 변화가 없어 지루하고, 망우산은 매일 오르기엔 힘든 난이도를 갖고 있어, 컨디션에 따라 두 코스를 번갈아 달리고 있다. 내가 특히 마음에 드는 것은 B코스인데, 출발지부터 5km 되는 거리까지 업힐이 계속되다가, 나머지 5km는 내리막을 달리며 시원한 바람에 땀을 말릴 수 있다. 무엇보다 그곳에서 만나는 아저씨 아주머니 러너들이 인사를 정말 잘 해주시는데, 이른 아침 마주하는 러너들과 함께 파이팅을 외치며 달리고 나면 그날은 정말이지 하루 종일 기분이 좋다.

책장에도 안 읽은 책이 수두룩한 건 안 비밀.... 소파에서 책 안 읽는 것도.. 새로 업어온 전자책 오닉스 팔마 "퍼트리샤 하이스미스는 불안을 묘사하는 천재적인 작가죠. 그녀 덕에 공포와 불안이 다르다는 걸 알았어요."

갖고 있던 전자책의 배터리가 빨리 닳아서 당근에서 다른 중고 전자책을 업어왔다. 핸드폰 모양으로 생겨서 그런지 더 손이 자주 가는 느낌이다. 마침 윌라에 하이스미스의 소설들이 업로드되어 하나씩 읽어보는 중이다. <퍼펙트 데이즈>에 나왔던 『11』은 아쉽게도 국내에 출간되지 않아 없어 아쉽지만(그렇게 잔인하다던데…!), 하이스미스의 매력에 빠지기에는 충분할 정도로 많다. 『열차 안의 낯선자들』과 『아내를 죽였습니까』를 읽었는데, 소설 속 주인공이 답답하고 머저리 같으면서도, 결국 살인을 저지른 자의 마음이 저런 게 아닐까 하며 이내 납득한다. 그들을 추리하는 인물이 너무 짜증 날 정도로 집요해서 그만 좀 놓아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들다가도, 과연 나는 누구를 옹호하고 있는가 돌아보며 무서움과 흥미를 동시에 느끼기도 했다.

반면 달리기는 결심에 속하는 인간적 행위다. 다시 말해, 걷기를 일시적으로 중단하겠다는 결심, 걷기를 다른 태도로, 다른 삶의 태도로 대체하겠다는 결심이다.1

일상의 반복은 일상을 안정시키는 데 기여한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우리가 유지하는 반복이라는 사실 그 자체에 의해 삶의 욕구 가능성의 토대를 세운다. 따라서 하찮음의 반복보다 더 탁월한 실존의 증거는 존재하지 않는다. 카뮈는 『시시포스 신화』의 초반부에서 한 사람이 더 이상 매일 면도하기를 원치 않았기 때문에 자살했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그 동기는 의심할 바 없이 가장 그럴듯한 이유들 중 하나다. 반복을 지속하는 것은 분명 삶을 유지하는 것이다! 반복이 불가능할 때, 삶은 끝장이다. (중략) 반복은 마치 중요한 것처럼 가장 무의미한 제스처를 강요한다. 삶은 이유 없는 제스처의 긍정 속에서만 유지된다. 달리기와 같은 하찮은 행동의 반복은 순수한 우연을 반짝이게 하기 위해 삶이 전적으로 기계적이고 자동적인 제스처의 생성에서 빠져나오늘 것을 가능하게 한다. 삶은 우연을,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니라 무엇인가로 만들면서 예술 작품이 된다. 이때 하나의 제스처의 전개는 삶의 스타일화와 같다. 하찮음은 고통과 같다. 왜냐하면 모든 삶의 우연의 영역이 폭발하기 때문이다.1

좋은 날씨를 함께 만끽할 누군가가 있다는 것으로 한없이 감사했던 5월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