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귀한 단순함과 고요한 위대함
가을의 시작은 Andrew Bird의 휘파람 소리와 함께. 새벽 공기가 제법 추워졌고, 어느 날에는 입김이 나오기도 했다. 그렇다고 쇼츠와 반팔을 포기하는 법은 없지. 공원을 달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코를 훌쩍이는 날이 많았다. 환절기겠거니 생각했지만 범인은 상상치도 못한 코로나… ㄴㅇㄱ 역시 인생은 확률 싸움이다. 100번의 기회를 가진 사람과 10번의 가진 사람의 결괏값이 같을 수 있다. 좀처럼 집밖을 돌아다니지 않는 나에게 왜 이런 시련을 주시나이까… 곧 있을 하반기 첫 대회를 앞두고 속상한 마음 가득이었지만, 그렇다고 별 수 있나. 사흘을 아무 것도 안 하고 푹 쉬었더니 다행히 빠르게 호전되었다.
중요한 날을 앞두고 몸이 아픈 것은 중학생 때부터 이어져 온 나의 콤플렉스이다. 평소에 애써 덤덤한 척하는 편이지만 실제로는 극도로 예민한 개복치임을 매번 몸의 신호로 들키고 만다. 마음은 속여도 몸은 못 속인다. 문득 4년 동안 한 번의 올림픽을 준비하는 선수들의 마인드 컨트롤 방법이 궁금했다 좋은 팁이 있다면 전수받고 싶기도 하고.
첫 트레일 러닝 대회에 다녀왔다. 굿러너 컴퍼니에서 주최하는 춘천 스카이 레이스 24k. 누적고도 1,100m의 결코 쉽지 않은 코스이다. 경춘선을 타고 한 번에 갈 수 있어 교통이 불편하지 않아 고른 대회였다. 코스의 구성은 비교적 단순했다. 10km 정도 되는 거리 동안 업힐을 오르고 나면, 그만큼의 평지와 내리막이 이어진다. 끊임 없는 오르막에 정신이 아찔했지만, 내리막 구간에서는 그림 같은 풍경을 끼고 일종의 해방감을 느끼며 껑충껑충 뛰어 내려왔다(그러나 그것이 문제였을까. 대회 다음 날 허벅지의 모든 구석구석을 누군가 바늘로 찌르는 듯한 고통을 느껴야 했다). 로드 마라톤과는 또 다른 트레일 러닝의 매력을 제대로 만끽할 수 있었고, 아무리 걷고 뛰고를 반복한다고 해도, 로드 마라톤에 비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날다람쥐처럼 업힐을 우다다 달려 나가는 고수들을 보며 나도 언젠간 코리아 100k에 도전하리란 다짐을 언제든 무를 수 있을 정도로만 해 본다.
천선란 작가의 북토크에 다녀왔다. 슬리퍼를 끌고 도보 10분 거리의 도서관에서 유명한 작가를 볼 수 있다는 게 신기했던 날. 북토크를 워낙에 많이 하셔서 그런지 답변이 준비된 것처럼 술술 나오더라. 2시간 가까운 대화 중에서 귀에 들어왔던 내용들을 꼽아보자면
- 시간의 유한함보다는 세계를 넓게 경험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며 산다.
- 좀비물은 인간만 고통 받는 장르. 그래서 매력적이다.
- ‘좋은 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삶이 쌓여야 한다.’는 말. 덕분에 힘든 20대를 보내고 나서 작가로서의 자질을 갖출 수 있게 되었다는 생각을 했다고.
행복과 설레임 가득한 표정으로 작가의 말을 경청하던 고등학생들이 참 보기 좋았다. 나중에 너희들의 책도 꼭 읽어보마.
원서 읽기 챌린지 중간 보고. 종이책으로 읽다가 뜻을 모르는 단어들이 많아, 이전에 사두었던 전자책으로 갈아탔다. 책을 읽다가 뜻을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엑셀에 적어두는 식. Kindle이 예상하는 ‘완독까지 걸리는 시간’은 14시간 53분. 아득한 시간에 굴하지 않고 매일 조금씩 읽고 있다. 확실히 원서로 읽었을 때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느낌이다. 물론 그게 무엇이냐고 진지하게 캐물으면 명쾌하게 대답할 자신이 없다.
바티칸 박물관에 갔을 때의 일. 빙켈만이 ‘고귀한 단순함과 고요한 위대함’이라고 일컬었던 라오콘 군상은 내 상상에 비해 터무니없이 작았다. 군상이 작았다기보다 내 상상이 컸다고 표현하는 게 옳으리라. 실제 크기가 다른 군상에 비해 작은 편은 절대 아니니 말이다. 과거의 보았던 책에서 옷의 미세한 주름과 뱀에게 물린 라오콘의 일그러진 얼굴, 손가락과 발가락 마디 등을 클로즈업하여 보여주었기 때문에, 군상이 훨씬 거대하리라고 짐작했던 것 같다.
이렇듯 작다, 크다 하는 것은 결국 상대적인 것이어서 실제 크기가 얼마인지는 생각보다 중요하지 않다. 일기는 내 하루의 표정과, 주름과, 그것에 달린 팔과 다리와 손의 마디를 유심히 들여다볼 수 있는 행위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하여 보잘것없이 작고 뭉툭해 보이기만 했던 날들을, 보다 입체적이고 뚜렷한 윤곽으로 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조각가는 조각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돌 안에 이미 존재하는 조각을 세상 밖으로 꺼내어 주는 역할을 한다’는 말처럼, 일기를 쓰는 일도 이와 닮아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