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의 일상

동네 꽃집에서 식물을 하나 들였다. 이왕 키우는 거 특이하고 이쁜 녀석으로 시작하는 것이 좋지 않겠냐는 꽃집 아주머니의 말에, 키우기 쉬우면서도 잎의 색이 독특한 사파이어 엔젤을 품에 안고 데려왔다. 아주머니는 처음 식물을 키우는 사람의 대부분이 물을 너무 많이 주어 죽이는 경우가 많으니 특히 조심하라고 당부하셨다. 가만히 보고 있으면 어제보다 잎이 조금 더 말려있거나 색이 달라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고, 그럴 때마다 물을 주고 싶은 충동을 참아야 했다. 다음 날 기다란 지렁이가 나와서 깜짝 놀랐는데, 식집사 선배인 엄마에게 말하니 덤덤하게 ‘흙이 좋은가 보네’라는 답이 돌아왔다.

사계 장미는 추운 겨울이 오기 전까지 몇 번이고 피려나 보다. 여름에 비해 키도 어찌나 자랐는지 족히 2미터는 되어 보인다. 이제는 고개를 위로 치켜들어야 꽃의 생김새를 확인할 수 있다.

부쩍 추워진 요즘에는 비교적 따듯한 점심시간에 달리러 나가곤 한다. 오후의 공원에는 식후 산책을 나온 직장인 무리와 어린이집 꼬마들이 오후의 햇살을 듬뿍 받으며 잔디밭을 뛰어노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한 바퀴를 돌면 5km 남짓. 너무 힘들지도, 그렇다고 너무 가볍지도 않은 적당한 정도로 뛰고 오면 정신이 맑아진다. 이런 식으로 하루를 더 잘게 쪼개려는 시도는 조금 더 만족스러운 날을 보내는데 큰 도움이 된다.

『아파트 이웃들이 수상해』 시즌 5가 어느덧 막을 내렸다. 직전 시즌에 비해 많이 아쉬웠지만, 그동안 생긴 정으로 매주 화요일마다 거르지 않고 챙겨 보았다.

조금 멀리 떨어진 곳에 있던 한식뷔페가 얼마 전에 집 근처로 이전을 했다. 갓 담근 김치가 맛있고, 나물도 많아서 일주일에 한 번은 들른다. 오픈 시간인 11시에 맞추어 가면 김이 모락모락 나는 음식을 원하는 만큼 먹을 수 있다. 정성스러운 음식을 먹으면 조금 더 오래 배부른 느낌이 든다.

JTBC 마라톤을 끝으로 올 한 해 준비했던 풀코스 마라톤을 모두 마쳤다. 공식 기록은 3시간 25분 15초. 올해 초만 해도 꿈도 못 꾸었던 기록으로 마무리했지만, 더 잘 달릴 수 있었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바꾸어 말하면 더욱 발전할 여지를 발견했다는 이야기가 될 것이고, 그렇기에 내년을 위해서 다시 차곡차곡 일상의 달리기를 쌓아 올릴 예정이다. 그나저나 이번 마라톤 시민 응원 최고였다. 달리는 42km 내내 응원을 받은 느낌. 몇몇 분들은 내 이름을 호명해 주기도 했는데, 누군가 나의 이름을 불러준다는 게 그렇게 힘이 되는 일인지 몰랐다. 다음 주면 올해 모든 대회를 마치게 된다. 당분간은 사람도 만나고 그래야겠음…

10월에는 출근 시간보다 조금 일찍 스타벅스로 향했다. 주로 밀린 공부를 하거나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영어로 된 인터뷰를 읽으며 모르는 단어들을 기록하곤 했다. 내가 들르는 지점에는 언제나 에너지가 넘치는 직원이 한 분 계신다. 따뜻한 음료를 시키면 텀블러를 데워서 담아주고, 디저트를 시키면 따듯한 물이 필요한지 묻는다. 주어진 일 이상을 해내려는 사람을 보면 얻게 되는 묘한 안정감이 있다. 나쁜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 같고, 세상이 올바르게 돌아가는 느낌이랄까.

오랜만에 취향에 맞는 영화를 만났다. 코고나다 감독의 『빅 볼드 뷰티플』이 그것이다. 감독이 그리는 감정의 결이 좋다고 이제는 확신에 찬 어조로 말할 수 있다. 꽤 여러 장면에서 눈시울을 붉혔는데, 다른 관객이 졸음을 참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다는 이야기를 연인에게 건네는 것을 들었다. 옆자리에 앉지 않아서 다행이다.

10월에는 약속이라도 한 듯이, 기다리고 있던 신보들이 발매되었다. 모두 기대한 것 이상으로 좋았지만, 내가 가장 많이 들은 앨범은 수프얀 스티븐스의 『Illinois』다. UFO로 시작해 이집트로 끝나는 1시간 30분의 장엄한 여정을 몇 번이나 반복했던지. 뒷이야기도 흥미로워 유튜브와 레딧을 돌아다니며 20년 전 앨범을 마치 어제 나온 것인 양 씹고 뜯고 맛보고 즐겼다.